한 40대 한인 남성은 매년 연말이면 ‘CD장사’가 된다. 동년배들이 좋아할만한 노래들을 컴파일해 하나의 CD로 만든 후 이를 구워 주변 사람들에게 파는 것이다. 가격은 1장에 10달러. 이렇게 CD를 팔아 모은 돈을 불우이웃 돕기에 사용한다.
올해도 그는 CD를 팔아 모은 돈에 자신의 돈을 약간 보태 노인들을 돕는 기관에 보냈다. 동창들과 지인들에게 취지를 설명하면 흔쾌한 표정들로 지갑을 연다. 여러 장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자신만의 연말 나눔 행위를 ‘십시일반’(열사람이 밥 한술씩 보태면 한사람 먹을 분량이 됨)을 본 따 ‘십불일반’ 프로젝트라 이름 붙였다. 음반 1장에 10달러라는 뜻이다.
그는 작은 나눔을 통해 두 가지를 깨우쳤다고 말한다. 하나는 “아무 것도 나눌 것이 없을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는 말이 단순히 나눔을 장려하기 위한 정교한 수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또 혼자서 하는 큰 자선과 구제도 훌륭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부담 없이 동참할 수 있는 나눔의 횃불 또한 의미가 있다는 깨달음이다.
19세기 중반 힘차게 국가 건설에 매진하고 있던 신생 미국을 방문한 프랑스의 위대한 정치사상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이 새로운 나라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자신의 책에 소감을 적었다. 그가 본 것은 프랑스와 영국 같은 올드유럽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공동체 정신이었으며 그것은 곧 나눔과 상부상조였다. 토크빌이 관찰한 위대한 미국의 정신은 오늘에도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도 생명력이 유지되는 것은 한 가운데 심장처럼 자리 잡고 있는 “가진 사람은 가지지 못한 사람과 나눈다”는 불문의 ‘나눔협약’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신은 지금도 힘차게 박동하고 있다. 올 한해도 미국인들이 기부한 돈은 GDP의 2%에 해당하는 3,000억달러에 달한다. 물론 이 가운데 10분의1인 300억달러는 ‘오마하의 현자’ 워런 버핏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최근 한인사회에서도 나눔이 확산되고 있다. 각종 구호기관에 기부를 하거나 직접 불우한 이웃을 찾아다니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또 경제적으로 성공한 일부 한인들은 재단설립을 통해 나눔과 사회환원을 실천하고 있다. 모양과 액수는 달라도 본질은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나누기 시작한 후 삶이 더욱 풍요로워졌다”는 것이 그것이다. 나누고 나니까 삶의 잔고가 오히려 늘었다는 얘기다.
‘로마의 휴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오드리 헵번은 삶의 궤적이 그녀의 외모와 영화 만큼이나 아름다웠던 사람이다. 커리어의 정상에서 은막을 떠났던 헵번은 지난 1993년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세계 빈민국들을 돌아다니며 열성적으로 아동구호 활동을 펼쳤다.
헵번은 세상을 떠나기 전 이런 유언을 남겼다. “매혹적인 입술을 갖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 좋은 점을 보여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네 음식을 배고픈 사람들과 나눠라.” 하나를 나누면 절반이 아니라 오히려 둘이 된다는 나눔의 미덕을 이처럼 아름답게 표현한 글을 별로 보지 못했다.
나눔은 육체의 피트니스이자 동시에 정신의 피트니스이다. 불필요한 칼로리와 지방을 덜어 버리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한 버림과 나눔을 통해 몸과 영혼이 더욱 건강해 질 수 있다는 것이 헵번의 유언에 담긴 뜻이다.
모두가 한결 너그러워 지는 연말. 다같이 나눔의 피트니스 클래스에 등록했으면 한다. 피트니스가 더욱 확실한 효과를 거두려면 꾸준함이 있어야 하는 법. 계절적 나눔에서 한걸음 더 나가 생활 속의 나눔으로까지 발전시킨다면 어떨까. 월드비전 후원, 다운타운 노숙자 돕기 등을 통해 1년 사시사철 꾸준히 나눔에 참여하고 있는 한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한인 커뮤니티가 건강해 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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