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백’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요즘 한국에선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 취업을 위해서 외국어 학원과 각종 자격증 학원에 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외모도 실력이다’라는 취지에서 헬스클럽과 성형외과를 찾는 대학생들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한국에서 취업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토익(TOEIC) 점수’라는 사실에 반대할 사람 별로 없을 것이다. 얼마 전 한 신문에서는‘대학 졸업자의 취업 스펙’이라는 것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토익 점수는 그 기사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중요한 항목이었다.
토익은 미교육평가위원회(ETS)가 국제 공용어로서의 영어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개발한 시험이다. 우리나라에는 82년에 도입되었는데 올해는 응시자가 무려 2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ETS를 대신해 한국에서 토익시험을 주관하는 시사영어사는 지난 한해 토익 수수료로만 800여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중 10%는 로얄티로 ETS에 지급한다고 하니, ETS는 한국 기업과 관공서들이 지원자들에게 토익 점수를 요구하는 덕분에 별다른 노력 없이 한국에서 매년 80여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말하기와 쓰기 시험이 추가되는 12월부터는 현 3만4,000원인 응시료가 12만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하니, 내년부터 우리 국민은 2,400여억원의 토익 응시료를 지불할 것이고, ETS는 240여억원의 로얄티 챙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토익은 영어실력 측정시험으로서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가? 영어를 잘 하면 토익점수가 높긴 하지만, 토익점수가 높다고 해서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수년 전 서울대학교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토익시험의 단점을 보완하여 ‘텝스’라는 영어시험을 개발했다. 그러나 학원·교재 등의 광범위한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토익의 아성을 무너뜨리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는지, 아직 극소수 대학원들을 제외하면 지원자에게 토익 대신 텝스를 요구하는 곳은 거의 없다. 그도 그렇지만, 내년 1년 동안 미국회사인 ETS에 지불하게 될 240억원이란 로얄티가 서울대학교로 들어간다면 우리나라 기초학문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 대학 교수 1인당 1년 평균 연구비는 5,0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하니 말이다.
토익으로만 취업 응시자들을 평가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물론 각 기업과 관공서들은 토익 이외에 대학 학점 및 면점 등으로 평가를 하고 있지만, 토익은 그 점수가 반드시 어느 정도 이상 되어야 서류심사의 첫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항목이다. 영어만 잘 하면, 아니 토익점수만 높으면 일을 잘 할 수 있는가? 일부 직업군을 제외하면, 조직 생활력, 양심, 상식, 분석력 등등이 일을 잘 하기 위해 갖춰야 할 영어보다 훨씬 중요한 가치들이다. 부모 덕분에 외국에서 수년간 산 경험으로 영어는 잘 하지만 양심 부재에 다른 조건은 자격미달인 사람들은 어떻게 걸러낼 것인가?
최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한국사 능력검정시험이 개발되었다. 역시(歷試)라고도 일컬어지는 이 시험은, 지금까지 있어왔던 단순 암기를 요하는 국사 시험과는 달리, 기본적인 국사 지식뿐만 아니라 상당한 사고력과 분석력을 요구한다고 한다. 영어란 본인의 입신양명을 위한 도구인 실용학문인 반면, 국사란 본인보다는 본인이 속한 사회, 나아가서 국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어야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기초 학문이다. 역시(歷試)를 잘 활용한다면, 토익의 단점을 완벽하게 메울 수 있는 보완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취업을 위해서 토익 대신 텝스와 국사를 공부하는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
<김영무> 월드뱅크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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