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쳐시니 석양에 지나는 객(客)이 눈물계워 하노라”
뱀의 꼬리와 같이 머리 나쁘고 부지런한 정치인의 아집과 궤변으로 온 세상이 소란하고 불안했던 병술년을 보내며 태사(太師) 원천석(元天錫)이 지은 시조를 읊으며 답답한 심정을 다소나마 달래고 싶다.
고려시대 벼슬을 하지 않고 숨어사는 학덕 높은 선비를 가리켜 ‘은사’(隱士)라 불렀다. 이 ‘은사’의 대표적인 인물이 원천석이었다. 그는 고려 말 정치가 너무나 문란하므로 태종을 가르쳤던 스승인 태사였지만 벼슬을 거절하고 치악산에 들어가 농사지으며 부모 봉양에만 힘썼다. 임금이 불러도 오지 않아 직접 찾아갔으나 역시 나타나지 않았던 ‘은사’로 유명하다.
요즘도 노무현 정권 아래 총리직을 준다 해도 겸손하게 스스로 자격이 없다며 사양하는 인물이 더러 있어 정치도의가 살아있음을 볼 때 한국의 장래가 어둡기만 하지는 않다.
향후 한국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칠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테러와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이라는 21세기적 안보위협과 중국 위협론을 축으로 한다. 중국이 잠재적 패권 도전세력으로 등장, 이에 대처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 미국은 이 2가지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반 테러 동맹체제 구축, 대 중국협력과 경쟁 병행, 지역 및 다자주의의 보완적 활동, 한미 동맹 재조정 및 북한 압박외교 등을 구체화하고 있다.
특히 동맹정책에 있어서 미국은 현재 대규모 주둔기지를 바탕으로 통합된 전략을 추구하는 전통적인 체제 대신, 중국을 견제하는 네트워크로서 일본, 호주, 베트남,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아제르바이잔, 몽고 등 소규모 기지로 전환하여 사태 발생시 신속 대응할 수 있도록 신 동맹체제를 만드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 4월 워싱턴에서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중국이 인권과 집회, 언론, 종교의 자유를 존중하는 문제에 대해서 후진타오 주석과 계속 대화할 것이다”라고 했고, 후진타오 주석은 “부시 대통령이 얘기하는 민주주의가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으나 중국은 민주주의 없이 근대화는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라고 하여 양국 관계가 매우 껄끄러움을 표출했다. 뿐만 아니라 미·중간의 교역불균형, 지적 재산권, 환율정책 나아가 지구촌의 북핵, 이란핵, 환경문제 등을 논의했으나 어느 것 하나 뚜렷한 해결책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에 대해서 후진타오 주석은 미국의 심기를 염려했는지 보잉사 항공기 80대 구입 등 미국산 제품 구입으로 회유하려 했으나 미국의 반응은 냉담했다.
아무튼 부시행정부는 미·일동맹을 ‘지역질서의 근간’이라 보고 일본과의 동맹관계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지역 안보를 증진시키는 것에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국제 권력 정치의 냉엄한 환경 속에서 한국은 국내적으로 엄청난 양극화 현상에 휘말려 민주정치 체제의 능력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즉 북의 핵무기와 남의 재래식 무기, 동과 서의 지역감정, 빈자와 부자의 격차, 사상적 좌파와 우파, 이념적 진보파와 보수파, 정치인들의 권력형 부정부패와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 등 양극으로 갈라져서 적대적 갈등과 불안의 위기를 맞고 있다.
독일 태생 유대인 철학자 에릭 프롬은 ‘건전한 사회’라는 저서에서 “역사란 ‘거리의 제거사’(距離의 除去史)라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교통과 통신수단의 발달로 인한 지리적 거리의 제거 또는 단축과정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경제적 발전으로 인한 사회적·군사적 거리의 제거 과정이라 볼 수 있다”라고 역설한 바 있다.
정해년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 조국의 정치인은 물론 국민 모두가 ‘건전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거리의 제거사’라는 의식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박종식
예비역 육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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