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형편에 처한 딱한 사람의 이야기가 기사화될 때 기자들은 취재대상이 ‘과연 도움이 필요한 형편에 처해 있고, 그만한 도덕성을 갖춘 사람인가‘를 입증해야 하는 의무감에 시달린다.
아무리 짧은 기사라도 ‘안 됐구나’ ‘돕고 싶구나’란 반응이 나올 수 있으면, 1센트라도 돕고 싶다는 반응을 표해 오는 독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반대로 각종 단체나 개인이 벌인 기부 및 봉사활동 내용은 곧바로 신문사에 전달된다. 선행문화를 활성화시켜 한인 커뮤니티를 살맛나는 곳으로 만들자는 차원에서 이런 일들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지면에 반영된다.
봉사나 기부를 한 사람도 미디어에 얼굴이 나오고, 기록이 남는다면 뿌듯한 마음을 갖게 된다.
가끔은 한 번도 뉴스에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의 선행이 크게 보도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이를 받게 된 곳에서 감사의 마음으로 알려오는 경우다.
언론의 보도를 바란 적도 없었기 때문에 굳이 취재에 응하려고 하지 않지만, 그럴수록 그들의 선행은 빛을 발한다.
‘일반인의 선행’이 낯선 것은 베푼다는 것 자체를 어렵게 생각하는 것도 이유지만, 기부는 ‘넉넉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것이란 통념에서 빠져 나오기가 보통 힘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26일 편집국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직장생활을 하는 딸을 둔 어머니인데 딸이 3,000달러를 기부하고 싶은데 적당한 곳을 찾는데 도움을 받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굳이 자세한 내역을 얘기하지 않은 어머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디자인 컨설턴트로 올해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20대의 딸이 3,000달러를 한인 커뮤니티에 기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함께 찾고 있다고만 알려줬다.
딸의 수입 정도를 묻는 질문에 6만달러 정도를 받는데 기회가 된다면 매년 기부를 하고 싶은 의사가 있다고 했다.
3,000달러면 없는 사람에겐 큰 돈이고, 있는 사람에게도 작은 돈이 아니다. 특히나 얄팍한 월급봉투에 의지하는 직장인들에게는 큰 돈이다. 설령 연말 보너스를 두둑하게 받았다 하더라도 나보다는 ‘타인’을 위해 자신의 지갑을 열겠다는 생각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이 젊은 직장 초년생의 기부 결심은 ‘넉넉한 상황이 되면 그 때 나눠야지’라고 애써 위안하며 살아온 나를 포함한 이 시대의 많은 ‘일반인’들에게 세밑을 맞아 다시금 질문을 던지게 하고 있다. ‘과연 나는 타인에게 베풀 돈이 없는 것일까, 마음이 없는 것일까?’
배형직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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