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정길(수필가)
“젊은 시절에 대학 재수생이라는 이름으로 백수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고향에서 하릴없이 책이나 보며 지냈다. 가끔씩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술판을 벌리고는 하였다. 얼마씩 추렴하여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술판을 벌리기 위해 화투판을 벌리기도 했다. 거의 다 백수 건달들인데 어디서 용돈들이 생겼는지 궁금한 일이었다.그 당시 바닷가인 내 고향마을엔 가정집에서 몰래 술을 제조하여 안방에 손님을 불러 영업을 하는 곳이 많았다. 안주는 생선찌개나 김치찌개 그리고 몇가지 나물 종류였다.
소주가 들어오면 어떤 친구는 알콜 도수를 본다고 젓가락에 술을 찍어 성냥불을 붙이면 푸르스름한 불꽃이 무섭게 날름거렸다.
나는 술을 마시기 전부터 기가 죽었다. 내 주량은 그런 술 두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서너 잔을 마시면 한쪽 구석에 쓰러질 정도였다.이 독한 술 때문에 고향 마을에는 오십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았다. 어떤 친구 아버지는 이 독주를 김치 깍두기 안주로 취하도록 마시고 길에 쓰러져 돌아가셨다. 다른 친구 형은 술을 마시고 밖에서 자다가 입이 비틀어지는 구안와사에 걸려 고생을 했다. 돌아가신 선
친도 술병으로 고생하시어 어머님이 오래동안 죽을 끓이고 약을 챙기며 수발을 하셨다.
어느날 몹시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속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울렁거렸다. 집 근처 골목길에서 심하게 토악질을 했다. 누군가 내 등을 토닥거리며 “목적 없이 마시는 술은 독이 된다. 여비를 마련해 줄터이니 서울에 있는 형에게 가거라” 아버님이셨다.나는 부모님께 큰 불효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닭없이 눈물이 흘렀다.악몽같은 세월에서 벗어나 살아오며 목적 없이 마시는 술은 독이라는 아버님의 말씀을 커다란 경고로 삼았다.
우리가 살아온 한국의 현실은 오랫만에 반가운 친구를 만났다고 마시고, 사업에 실패하고 실연 당했다고 마시고, 즐겁다고 마시고, 슬프다고 마시고 곤드레가 된다. 미국에 건너온 우리 한인들도 망년회다 동창회다 모임을 가졌다면 으례히 술판을 벌린다.술이 우리 생활에 위안과 기쁨을 주는 음식으로 받아들인다면 없는 것보다 있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절제할 줄 모르는 인간들에게는 건강과 생활을 파괴하는 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우리는 취중에 저지른 실언이나 실수를 용서받기를 원한다. 실수할 만큼 취하도록 마신 잘못까지는 용서받기 어려울 것이다.“가급적이면 마시지 말라, 마시되 취하지 말라. 취하되 흔들리지 말라”는 <인격론>의 ‘스마일즈’의 충고를 한 번 정도는 음미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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