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욱이를 데리고 오는 금요일이다. 기숙사의 방침대로 5주만에 아이를 데리러 가는 것이다. 학교가 끝나고 스쿨버스를 타고 기숙사로 도착할 시간에 맞춰 가기로 했는데 엄마와 난 뭐가 그리 급한지 오후 일찍부터 가서 승욱이 침대도 만져 보고 승욱이 옷장에 옷들도 들여다 보고 승욱이의 흔적 여기저기를 확인하고 있었다. 금요일이라 차가 막혀서 그런지 스쿨버스가 20분이나 늦게 온다고 디렉터가 일러 주었다.
스쿨버스 정류장에서 두 아줌마가 목을 빼고 승욱이가 오나 쳐다보는데 잠에서 덜 깬 작은 꼬마가 스쿨버스에서 내린다. 자기 어깨보다도 더 큰 가방을 메고 졸린 얼굴을 하고 보조교사의 손을 잡고 기숙사로 들어오고 있다. 엄만 “어구, 저기 우리 새끼 온다. 너 가만히 있어 봐 내가 가서 먼저 아는 체 하게”
친정엄마가 달려가서 “승욱아, 할머니 여기 있네” 이럴 때 우리의 시나리오는 할머니와 나를 덥석 끌어안으면서 서러움과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승욱이는 걸어오는 걸음을 계속 걷고 있다.
“욱아, 할머니 여기 있잖아, 할머니” 할머니의 애타는 부름에도 묵묵부답이다.
“욱아, 엄마 여기 있네” 승욱이의 손을 잡았다. 내 손을 더듬거리며 만져보더니 아주 절제된 웃음을 한번 씩 보여준다.
‘아니, 얘 승욱이 맞아?’ 승욱이 짐을 챙겨서 데리고 나오는 데도 기뻐하거나 웃음조차도 없다.
‘승욱, 너 너무 이상하다. 혹시 화 났니? 그런 거니?’
차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도 어찌나 얌전히 카시트에 앉아 있는지 군기가 확실히 든 상태다. “어쩌면 저리 변했지? 신기하다 신기해. 승욱이 같지가 않아”
오래 전 한국에서 보던 TV 프로그램 중에서 ‘우정의 무대’라는 프로그램 가운데 제일 하이라이트는 ‘그리운 어머니’라는 코너였다. 어머니 한 분이 군부대를 찾아와서 아들을 만나는 내용을 보여줬는데 장병들은 무대 뒤에 가려진 어머니의 목소리만 듣고 자신의 어머니라고 서로 달려와 뽀빠이 아저씨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곤 했었다. 승욱이가 나를 만나면 말은 하지 못하지만 몸짓으로 표정으로 가슴으로 “앞에 계신 분이 저의 어머님이 확실 합니다”라고 표현해 줄줄 알았는데 의외로 무표정, 무반응이라 엄마도 나도 약간 당황을 했다.
그런데 집으로 오는 길에 큰 아이를 학원에서 픽업을 하고 차에 태우니 승욱이가 형의 목소리에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반듯하게 뒷자리에 앉아 있던 승욱이가 몸을 돌려 형을 더듬는다. 집에 도착해서 집안으로 들어오니 승욱이가 그제야 편안한 얼굴을 보인다. 잔득 군기가 든 얼굴이 풀리면서 예전의 승욱이로 돌아오고 있다.
‘우리 아들 그랬구나. 불안했었구나. 엄마가 또 다른 곳으로 보내나 싶어서 긴장을 하고 있었구나. 기숙사에서 만나서 2시간 동안 얼어 있던 승욱이의 마음을 여는데 엄마도 아니고 할머니도 아니고 형이었구나. 형아가 있는 것을 알고서야 집으로 가는 것을 안 것이구나.’
오면서 먹을 것을 줘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승욱이가 집에 와서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밥을 먹고 자기 침대로 가서 드러누워 냄새를 맡고 좋아하는 승욱이가 이제야 마음을 놓고 나에게 안겨 있다.
“힘들었지? 그래 알아. 모든 것이 낯선 곳에 혼자 떨어져서 마음고생 많았지? 의사소통도 되지 않고 음식도 맞지 않고 힘들었던 거 엄마가 잘 알아. 이것이 네가 세상으로 나가는 것의 첫 관문이란다. 앞으로 이것보다 더 힘든 것을 헤쳐 나가며 살아야 돼. 그런데 그거 아니? 너 만큼이나 엄마도 힘들었다는 걸.”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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