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투덜거리고 있었다. 사실 나의 이런 모습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있는 것인지 모른다.
가끔은 아주 작게, 그러나 가끔은 아주 마음껏 소리도 지르며 해변에 적을 물리치라고 내놓은 장군처럼 크고 작은 두 남자의 정리 상태를 지적하며 똑바로 정리를 하고 살도록 목청을 높여 가르치고 있다.
왜 이 물건들이 이곳에 있게 됐고, 왜 제자리에 놓이지 못한 것인지를 묻고, 큰 남자와 작은 남자의 정리 방법의 문제점을 콕콕 꼬집으며 지적을 통한 더 나은 발전을 꽤하기 위하여 본보기로 몸소 그 많은 어질러 있던 물건을 보란 듯이 치우는 사이 내 얼굴은 어느새 벌게져 있다. 물론 이쯤에서 내가 이럴 때마다 빠지지 않고 하는 대사가 있다.
내가 무슨 청소 로봇이냐?
집 밖에서 들으면 당당해 보이는 대사이지만 실제 집 안의 나는 목소리만 장군일 뿐, 모습은 열심히 일하는 일이 밀린 가정주부다.
한번은 ‘내가 치우지 않으면 누가 치우나’하고 얼마동안 지켜보니 좁은 집이 점점 발 디딜 틈 없어지고, 두 남자들은 이제 정리와는 상관없이 자유로이 물건을 이리저리 죄책감 없이 옮겨 놓고 있었다. 두 남자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집에서 지내는 나만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역시 답답한 자가 창문도 열고, 못 참는 자가 소리도 지르듯 결국에 밖에서 들으면 내 목소리만 들리니 나만 ‘나쁜 엄마’ ‘나쁜 아내’가 된 것 같고 이쯤이면 나의 완패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날은 청소를 하며 정리를 하며 어찌나 속이 상하는지 너무 화가 나서 씩씩대며 일을 하고 있는 나에게 갑자기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아버지가 그러시는데 물건이 내가 옮겨 놓지도 않았는데 움직였을 때가 행복한 거래. 내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유리잔이 일주일 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면 그건 외로움이라고 말씀 하셨어.
나는 화가 많이 나 있었기 때문에 시아버지께서 하셨다는 말씀이 제대로 들릴 리가 없었다.
언제 그런 말씀 하셨는데? 하고 한번 묻고, 예상했던 대로 몰라라는 남편의 답을 듣고는 마지막으로 그래도 이럴 때 당신이 해야 할 대사는 아니지라고 차갑게 이야기하며 휙 아래층으로 나머지 정리를 하러 내려갔다. 그러며 계단을 하나, 둘, 셋 내려오며 내가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시아버지께서 하신 그 말씀이 갑자기 타오르던 마음을 쓸어내리며 너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아버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무슨 뜻인지 너무나 잘 알 것만 같았다.
그 후로 나는 내 아이의 어질러진 장난감을 정리해 주어야 할 때마다, 또 나 혼자 청소를 해야 할 때마다 시아버지의 ‘움직이는 장난감에 대한 보고서’를 떠올리며 아이가 가져다 놓은 귀여운 블럭들을 주워 담으며 웃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화는 난다.
하지만 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우리 집 물건들이 내가 손대지 않는 이상 하나도 움직이지 않을 것을 상상하니 너무 슬프네요. 정말 참을 수 없이 슬프네요라고 나지막한 내 목소리가 아버님께 말을 건다. 마치 옆에 계신 것처럼.
김정연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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