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되면 내 탓이요 안 되면 조상 탓이고 남의 탓이다’
사람들은 이처럼 책임을 회피하고 남의 탓으로 돌린다. 사업이나 학문, 심지어 한 가정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이 남의 탓도 시대 탓도 아니라 사실 내 탓이 아니던가. 그 황금 같던 시간을 허송세월하고 실력도 없으면서 좋은 자리만 원하고 가난한 사람이 허황한 부자 꿈을 꾸다가 패가망신을 해놓고서 그저 남의 탓으로만 돌리려 한다.
이런 습관이 인간 창조 초기부터 싹튼 것 같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면서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는데 뱀의 유혹으로 하와가 먹고 남편에게 먹게 한다. 이 범죄를 아신 하나님께서 나무 사이에 숨어있는 남자를 부르시며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고 한 나무의 열매를 왜 먹었느냐”하시니 핑계를 대며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짝지어 주신 여자가 주기에 먹었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이 그 여자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쩌다가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여자도 핑계를 댄다. “뱀이 저를 꾀어서 먹었습니다.” 핑계요 핑계뿐이다. 그러다가 결국 에덴에서 추방을 당하고 말았다.
요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분명히 분제는 생겼는데 책임질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가정에서도 그렇고 직장과 사회, 교회,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BC 700여 년에 요나라는 선지자가 있었다. 요나는 선교의 사명을 받았는데 그가 받은 선교지는 적국인 앗수르 수도 니느웨였다. 그러자 소명을 버리고 ‘다시스’로 도망을 가다가 그가 탄 배가 큰 풍랑을 만났다. 선주가 두려워 자신의 신을 부르고 심지어 배를 가볍게 하려고 짐을 모두 바다에 던지나 풍랑이 잔잔해지지 않자 고대 근동에 흔한 풍속대로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당하였는지 알자고 실행하니 요나가 뽑히고 말았다. 그러자 요나는 현재 당하는 풍랑이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불순종 때문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만인 앞에 고백하고 회개하면서 “나를 바다에 던지시오. 그러면 바다가 잔잔해질 것이오. 바로 나, 나 때문에 이런 풍랑이 당신들에게 닥쳤소. 다 내 탓이오.”
그렇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려고 나서는 그 한 사람 때문에 풍랑은 멈추게 되고 니느웨도 결국은 거듭난 요나의 선교로 구원을 받게 된다.
언제나 그럴 것이다 책임을 통감하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 결국 그 한 사람은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리게 된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 교훈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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