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20일)엔 신문사에 이른 아침부터 전화가 쇄도했다. 평상시 대개 그랬듯 “오늘아침 신문 못 받았다”는 배달사고 신고가 아니라 (이명박과 박근혜 중) “누가 당선됐냐?”는 다급한 질문이었다.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다음날인 21일은 워싱턴주의 예비선거일이었다. 올해 처음 한 달 앞당겨 8월에 실시된 선거였는데 투표와 관련해서 신문사에 문의해오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종전의 각급 선거 때와 별로 다를 바 없었다. 역시 예상했던 일이다.
이번주 LA를 비롯한 미국 전역의 한인신문들은 본국신문보다 더 호들갑을 떨었다. ‘이명박 당선’ 이라는 제목을 1면에 통단으로 달았고 안쪽에 따로 여러 면을 할애해 해설기사를 실었다. 한인들이 그만큼 본국정치에 관심이 많다는 증거다.
필자도 1세지만 모국을 향한 한인1세들의 귀소의식은 매우 끈끈하다. 많은 한인단체들이 해외지부나 자매결연 형식으로 모국과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비즈니스·교육·문화·종교 등의 교류도 주류사회나 타민족 사회보다 본국과 훨씬 활발하게 갖고 있다.
미국 시민권 취득을 우습게 알 정도로 본국지향 증세가 심한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본국정세를 본국인들보다 더 소상하게 꿰뚫으며 아무 이해관계 없는 특정 정치인을 핏대 세워 비난하기 일쑤다. 워싱턴 주지사나 시애틀 시장이 누구인지 관심도 없다.
특히, 한국적 사고방식과 생활태도를 고수하며 늘 고국의 향수에 젖어 있는 노인들을 흔히 본다. 이들은“미국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남의 나라??라며 손사래를 친다. 한인들의 이런 특성을 들어 미국 사회학자 얼 H. 필립스 박사는 미주 한인들을 ‘Korean-Americans’(한국계 미국인)가 아닌 ‘Koreans in America’(미국 내 한국인)라고 꼬집었다.
오래전에 필자는 허정무 교수(웨스턴 일리노이대, 사회학)로부터 한인들의 지나친 본국지향 의식구조가 한인사회의 아이덴티티 정립에 역기능으로 작용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한인들이 본국지향이 아니라 한국적 특성을 살려 미국문화 창달에 기여하는 미래지향적 태도를 갖는 것이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구현하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이민자들은 원래 결단력과 진취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본국에 내린 뿌리를 일시에 거두어 낯선 타국으로 이주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민 온 뒤 본국지향의 보수적 사고방식으로 바뀌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물론 가족초청이나 투자이민이 확대되면서 뚜렷한 이민관이나 목적의식 없이 옆 동네 이사 가듯 태평양을 건너온 이민자들도 많다. 본국지향적 태도도 이들 중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귀소의식은 어차피 1세사회에서만 통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대신 ‘오 세이 캔 유 씨…’를 부르고, 태극기 대신 성조기를 향해 충성을 다짐하며 자라나는 2세들이 한국을 조국으로 생각할리 없다. 1세 한인들이 본국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2세들의 가치관이나 아이덴티티 정립에 혼돈을 줄 우려가 있다. 잘못하다간 자녀들까지도 ‘한국계 미국인’이 아닌 ‘미국 내 한국인’으로 표류하도록 조장하는 꼴이 된다.
이명박과 박근혜도 좋지만 힐러리와 오바마에도 관심을 갖자. 해외동포의 참정권 인정을 본국정부에 요구하는 것도 좋지만 워싱턴주의 2세 한인단체인 한미연합(KAC-WA)이 벌이고 있는 한인 유권자등록 운동에 호응하고 지원하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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