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수 자판기 위장복 등 범죄방지 발명품 러시
사실상 범죄는 하락… ‘불안’ 일본인 정서 반영
인적도 끊어진 한 밤중이다. 한 20대여성이 괴한에게 쫓긴다. 공포의 구두 발자국 소리. 그녀는 정신없이 도망친다. 모퉁이를 도는 순간, 잠시 숨을 죽이고 입고 있던 스커트를 펼쳤다. 남자가 뒤를 따라왔다. 모퉁이를 돌아보니 눈에 보이는 건 흔해 빠진 자판기들 밖에 없다. 여인의 종적은 찾을 길이 없다. 괴한은 결국 발길을 돌린다.
일본 도쿄의 좁은 골목길이다. 비프 보울 식당, 파칭코 장 등의 간판이 어지럽다. 그 골목길에서 디자이너 츠키요카 아이야는 특수 디자인의 옷들을 선보였다. 그 옷들은 일본을 짓누르고 있는 범죄공포를 조금이라도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 제작된 것이다.
<일본의 여성 디자이너 츠키요카가 음료수 자판기 위장용 스커트의 효용성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스커트를 뒤집어쓰는 순간 그 모습은 거리의 자판기로 바뀌었다.>
올해 29세의 여성 디자이너 츠키요카가 직접 시연을 펼친 새 디자인의 옷은 치한이나, 강도로부터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위장복이다. 그 옷의 효용성을 그녀는 길거리에서 증명해 보인 것이다.
그녀는 입고 있던 붉은색 스커트를 펼쳤다. 그러나 나타난 건 유명 음료수 로고다. 그 시트를 뒤집어쓰고 한걸음 물러서 이동했다. 그러자 자판기 모습으로 변했다. 뒤집어 쓴 시트에는 실물대 크기의 자판기 사진이 인쇄돼 있었다.
지나가는 행인들의 반응이 재미있다. 위장복을 입고 서 있는 그녀의 모습에 대해 전혀 무관심이다. 위장복을 거리에 흔히 있는 자판기로 착각해 그냥 지나치고 있는 것. 범죄 방지를 목적으로 한 이 자판기 위장복은 츠키요카가 개발 중에 있는 몇 가지 버전 중 하나다. 그 중 하나는 특수 기모노로 비상시 펼치면 거의 완벽할 정도의 위장이 가능하다.
자판기 위장복뿐이 아니다. 범죄 방지용의 갖가지 기상천외한 발명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범죄가 갑자기 늘어서인가. 아니다. 범죄는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왜 그러면 범죄 방지용 발명품이 러시인가. 아마도 매스 미디어 탓인지 모른다. 범죄가 났다고 하면 센세이널한 보도를 일삼는다. 때문에 일본인들은 안전에 대해 점차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분위기에서 페퍼 스프레이 등 기존의 범죄방지 도구 대신 ‘하이 텍’형에서 일본인 특유의 정서를 반영한 기상천외한 범죄방지 발명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맨홀 백’도 그 중의 하나다. 이 백의 발명자는 역시 츠키요카다. 백 모양이 맨홀, 다시 말해 하수구뚜껑을 빼 닮았다. 귀중품을 이 백에 넣고 간다. 도둑이나. 강도가 쫓아오면 그 백을 거리에 던진다. 그러면 마치 하수구뚜껑 같이 보인다. 부주의한 도둑은 그냥 지나치기 일쑤라는 것이다.
음료수 자판기 위장복이나, 맨홀 백 발명은 독특한 일본 문화의 소산이다. 미국인들은 스스로를 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범죄자자들에 대한 반격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본인들은 위장을 해 범죄자들을 피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주제넘게 나서는 것을 극력 회피하는 일본 문화가 이런 발명품들을 등장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에게는 슬쩍 피하는 것이 더 쉽다.” 범죄와 관련해 츠키요카가 하는 말이다. 이 같은 일본적 정서를 반영한 것이 그녀의 발명품으로, 위장복들은 고대 ‘닌자’가 사용하던 트릭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그녀의 설명이다.
그런 아이디어성 또 다른 발명품이 위장용 어린아이들의 백 팩이다. 유괴범이나, 괴한이 쫓아온다. 그러면 백 팩을 펼치고 그 뒤로 숨는다. 그 백 팩은 일본의 거리마다 설치돼있는 소화전과 똑 같이 보인다, 이 역시 범죄 방지 위장복이다.
취학 학령의 아이를 둔 일본인 부모들이 특히 우려 하는 것은 학원 내 범죄다. 내 아이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할까 보아 걱정이 태산이다. 그런 부모들을 위해 나온 상품은 칩을 단 가방이다. 아이들의 등하교 시간은 물론, 어디에 있는지 항상 체크가 가능하다.
등교 시 패션을 안내하는 책자도 있다. 이 책은 가령 이런 식의 충고를 하고 있다. 당신의 아이는 공부밖에 모르는 학생인가. 그러면 검정색 벨트보다는 희색에, 금속제 장식이 많이 달린 벨트를 착용케 하라. 이유는 그런 복장을 하면 불량배처럼 보여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여성들의 골칫거리의 하나는 전철을 탔을 때 밀착해오는 치한들이다. 그런 여성들을 겨냥해 나온 발명품은 특수 선글라스다. 그 선글라스를 착용하면 상대는 그 여성의 시선을 파악할 수 없어 접근을 꺼린다. 치한 방지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 발명품들의 상업성은 아직은 미지수다. 너무나 기상천외해 실용성이 떨어진다. 또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음료수 자판기 위장복도 그렇다. 하나같이 수제품으로, 한 벌에 800달러나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위장복의 경우에는 20벌이나 팔려나갔다는 소식이다.
<뉴욕타임스-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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