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미국에 도착해서 낯설면서도 적응해야 할 것들 중에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그 첫 번째가 팁 문화였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나는 팁 문화에 적응 중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팁 문화 때문에 미국에 온 첫 몇 해는 아예 외식을 하지 않았고, 겨우 한다면 팁을 내지 않아도 되는 투고나 패스트푸드점을 이용했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조금 더 대담해지며 우리의 외식시간은 언제나 점심이 되었다. 다행히 남편이 오랜 기간 학생이었기에 정말 외식을 하고 싶을 때는 저녁식사 시간보다는 팁을 적게 내어도 되는 점심시간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팁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남편 머리도 아이 머리도 만 6년이 넘도록 내가 잘라주고 있고 나 또한 미장원은 한국에나 나가야 동생과 함께 가는 곳으로 생각하고 살았다.
그렇게 살던 나와 남편, 그리고 내 아이는 이제 공부가 끝난 남편 덕분에 조금씩 저녁에도 외식을 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남편과의 시간이 맞는다면 나는 점심 외식을 선택한다. 그렇게 살던 우리 부부에게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늘 도시락을 싸다니는 남편이 일이 생겨 밖에서 먹어야 한다며 도시락을 내일은 싸지 말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런 그 날 집에 들어 와 남편이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내 등 뒤에서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오늘 점심을 먹으러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갔는데 행색이 아주 허름한 남자가 들어와 99센트 햄버거를 하나 시키고 1달러를 더 내어놓으며 그 점원에게 살며시 웃으며 “메리 크리스마스” 하더란다. 바로 뒤에 서 있던 남편은 아마 충격을 받았었나 보다. 처음 이 이야기를 남편이 나에게 해 주었을 때처럼 말이다.
우리는 저녁식사를 마주하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는 계속 물었다. 그 사람 행색은 어떠했는지,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등등 묻지 않아도 될 것들을 잔뜩 묻고 물으며 보지도 못한 그 남자가 나는 너무 궁금했다. 남편은 그 남자가 그리 부유해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고 또 다시 대답했고 우리 둘은 생각에 빠졌다.
도대체 허름해 보이는 그 남자가 자신의 햄버거 값의 해당하는 돈을 어떻게 선뜻 그것도 팁을 내지 않아도 되는 그 점원에게 내밀었을까 하며 우리는 아주 심각하게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우리 둘은 무언가 숙연해지고, 생각이 많아졌다.
남편이 말했다. “여보, 우리보다 겉모습은 허름해 보이지만 아마도 그 사람은 우리보다 1달러의 마음의 여유가 있는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 내가 말했다. “나도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그래 볼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솔직히 1달러가 아까워, 아니 그 보다 적은 돈이라도 절약하려고 매일 전단지를 훑어보지만 그 크리스마스의 1달러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 그러며 우리는 우리가 그 사람의 1달러가 새로워 보였던 이유는 크리스마스 인사를 돈으로 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1달러는 겉모습만 돈일뿐 가장 부담 없고, 행복한 인사의 의미라고 둘이서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잠깐씩 만나지만 1달러의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내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주 가는 마켓에서 어언 5년째 늘 마주치면 내게 환히 웃어주는 필리핀에서 왔다던 스완, 집에 고칠 것이 생기면 언제든지 우리 집으로 찾아 와 신나게 고쳐주고 가는 밝은 아저씨 살바도르, 그리고 자주 가는 햄버거 가게에 이름은 모르지만 우리가 만화에 나오는 트위티라는 새를 닮았다고 우리끼리 트위티라고 부르는 언제나 열심히 일하는 그 귀여운 아가씨 트위티.
벌써 마음이 바빠진다.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러나 걱정이다. 내가 잘 해야 할 텐데… 자연스럽게, 어색하게 내밀면 안 될 텐데 하고 자꾸 걱정이다. 안 해본 짓 하려니 떨리는가 보다.
김정연
<화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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