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연륜이 깊어감에 따라 여러 경험을 통해 깨닫는 것이 많지만 그 중의 하나는 자기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젊어서는 하늘을 찌를 듯한 패기와 열정으로 성취를 향해 질주하는 사람이 많지만 세월이 갈수록 삶의 많은 영역이 본인의 의지와 노력에 관계없이 종종 외부의 요인에 의해 결정됨을 깨닫는다. 어차피 인간은 출생부터 그 때와 장소, 부모형제와 환경, 신체조건 및 지능, 재주 등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결정되어지는 존재이다. 그 출발점부터 다르므로 인생의 공평함은 없다.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기독교를 믿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그 신앙을 본받고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자가 되는데, 만일 그들이 힌두교나 이슬람교를 믿는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면 어떠한 종교를 가지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이렇게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모든 면에서 어둡고 황량한 북한 땅에서 태어나 단지 먹을 것을 찾아 목숨 걸고 C국으로 도망친 탈북자들! 늘 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 이들이지만 이렇게 추운 겨울이면 더욱 가슴이 저려온다. 몇 번의 비디오를 통해 그들의 삶의 현주소를 보았기에 말할 수 없는 서러움과 불안감에 시달리며 도망자로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그들이 쉽게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늑한 환경에서 편하게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이 어쩌면 값싼 감정의 유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이들을 품고 전심으로 기도할 때 때로는 너무나 슬퍼서 눈물이 나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 만은 아닌 것 같다. 작년에는 밀알 선교단을 통해 C국의 H 마을에 거주하는 장애우 들과 탈북자 자매들을 직접 만나 말할 수 없이 가슴 아픈 사연을 듣고 같이 통곡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똑똑하고 반듯하게 생긴 이 자매들은 생존을 위해 500불에 팔려와 장가 못 가던 한족 노총각에게 시집가서 살고 있었다. 이들의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뒤로하고 내년에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며 무거운 발길을 돌렸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한 해가 저물어 간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현재 이들 중 한 분만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에 들어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내년에 올림픽을 개최하는 C국에서 탈북자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자 이들은 한국행을 결심하고 밀알 선교단에 눈물어린 간곡한 부탁을 해 왔다. 수수료만 안내자에게 주면 가능한 것은 이미 지상에 공개된 사실이다. 감사하게도 여러 교회나 개인이 이 일에 동참하여 이 자매들은 메콩강을 통해 라오스를 경유하여, 혹은 산을 넘어 태국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불법 입국자로 일단 검거되어 투옥된 후 재판을 거쳐 열악한 수용소에 장기간 머물다가 한국으로 들어갔는데, 산을 넘은 자매들은 밤에만 이동이 가능하여 어두운 산길을 헤매며 열두 개의 산을 넘었다 하니 그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며칠 전에 아직도 유일하게 태국 수용소에 남아있는 자매와 감격의 통화를 했다. 너무 편안한 환경에 있는 본인은 무어라 쉽게 위로할 수 없어 그냥 건강하라고만 했는데 힘들지만 한국에 들어갈 날을 꿈꾸며 잘 지낸다고 했다. 정말 필설로 표현하기 힘든 무서운 고난을 거쳤지만 믿음 좋은 이 자매들은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다 했다.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몇 달 전 한국에 들어간 한 자매는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기 위해 신학을 공부한다 들었다.
아직도 C국에는 수십만의 탈북자들이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헤매고 있다는데 누구의 죄 때문에 이들은 이러한 고난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아직도 지구상에 유일하게 분단되어 서로 대치하고 있는 나라, 우리 조국의 안타까운 현실. 최소한의 삶의 터전을 찾아 목마르게 울부짖으며 헤매는 탈북자들이 어서 속히 이 땅에서 없어지게 되기만을 기도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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