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답지 않게 온화한 날씨가 계속되더니 감자기 예기치 않던 폭설과 한파가 몰아닥쳐 지금이 역시 겨울임을 상기시킨다. 나는 계절의 변화를 좋아한다. 계절의 변화는 인생의 굴곡을 상기시키는데, 춥고 음울한 겨울이 지나면 화사한 봄이 오듯이 끝없어 보이던 음침한 절망의 늪을 지나고 나서 밝은 날이 찾아오는 것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출석교회에서 연초에 계획했던 A 기도원에서의 집회가 갑자기 닥친 폭설로 인해 장소가 옮겨지면서 A 기도원에 얽혔던 옛 추억이 생각난다. 오래 전 그 당시 섬기던 교회에서 신년집회를 A 기도원에서 가졌다. 교회사정이 몹시 어렵고 담임목사님도 안 계실 때인데, 교회 밴을 본인이 운전하게 되었다. 나이도 적지 않고 또 한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였는데, 운전할 젊은 성도들이 없어 캄캄하고 비까지 내리는 산길을 본인이 운전하면서 교회의 상황으로 몹시 서글프고 가슴 아팠다고 기억된다. 운전이 너무나 부담이 되어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금식집회인데도 껌을 씹으며 운전을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기도원 입구의 좁은 길을 놓쳤는데, 좁은 산길에서 도저히 밴을 되돌릴 수 없어 차를 돌리기 위해 길가의 개인 집의 큰 마당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그만 비에 흠씬 젖은 진흙탕에 차가 빠져 꼼짝달싹 안 하는 것이었다. 주인 없는 집에 쌓인 장작 등 마당의 물건을 바퀴 밑에 넣고 차 빼기를 시도했는데 점점 진흙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갈 뿐이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차안에는 주로 노인들이 계시기에 더욱 미안하고 당황하게 되어 기도도 잘 나오지 않았다. 휴대전화가 흔하지 않을 때라 아무도 가진 분이 없어 할 수 없이 길가로 걸어 나가 가끔씩 지나가는 차를 향해 미친 듯이 손을 흔들며 도움을 청했으나 야속하게도 아무도 차를 세우는 사람이 없었다. 더욱 나를 곤혹스럽게 한 것은 강사로 모시고 가던 C 목사님이 나의 형편을 이해하지 못하고 “금식기도회에 가는 사람이 껌을 씹으며 운전을 하니 문제가 안 생길 리가 있겠어요?”라고 말씀해 나를 더욱 서글프게 했다. 그런데 이때 마침 집주인 부부가 차를 몰고 마당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아주 연세가 많은 백인 노부부였는데, 너무나 반가와 노부부를 붙잡고 도움을 청했다. 물론 허락 없이 장작 등 마당의 물건을 쓴 것을 사과하면서. 그러나 이분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별 대꾸도 없이 뚜벅뚜벅 걸어 집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기에 초인종을 누르기도 하고, 문을 두드리기도 했으나 별 반응이 없어 속에서는 서서히 분노가 치밀기 시작하여 거친 숨을 몰아쉬게 되었다. 한참 후 드디어 문이 열리며 할아버지가 천천히 나오시는데 온 몸을 덮은 작업복으로 갈아입으시고 말없이 한쪽 구석의 트랙터로 가시더니 트랙터를 밴으로 몰고 왔다. 그런 후 진흙탕인 밴 밑바닥에 누워 체인으로 밴과 트랙터를 연결하더니 밴을 진흙탕에서 끌어내었다. 이 분은 이 작업을 하면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일을 진행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는 동안을 참지 못하고 이런 분에게 분노했던 내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든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너무나 고마워 감사의 표시로 사례 드리기를 간청했지만 이분은 미소로 손을 흔들며 사양하시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집안으로 들어가셨다. 그 인자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행함이 없이 혀로만 사랑을 외치며 조그마한 선행과 희생도 남에게 알리지 못해 안달하는 요즘 세상에 나는 이분에게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같이 묵묵히 자기에게 맡겨진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같은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이분이 기독교인인지는 모르나 만일 그렇다면 이러한 삶을 통해 많은 분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리라고 믿는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때 A 기도원에서 가진 집회가 더욱 은혜가 넘치는 감격의 집회가 되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박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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