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멸종동물에 토종 호랑이와 함께 ‘호랑이 같은 아버지’도 낄 만하다. 자모(慈母)는 넘쳐나지만 엄친(嚴親)은 드물다. 요즘 젊은 아버지들의 자녀에 대한 사랑과 희생은 어머니 못지않다. 그래서 ‘호랑이 아버지’ 대신 ‘기러기 아빠’들이 양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8일자 신문에 영어공부 하러 조기유학 가는 아이들과 함께 아내도 딸려 보내고 한국에서 혼자 살며 철따라 한두번 찾아가는 ‘기러기 아빠들(geese fathers)’의 애환을 보도했다. 경제력이 많아 자녀와 아내에게 수시로 날아가는 ‘독수리 아빠’도 있고, 가족이 그립지만 여유가 없어 날아가기를 아예 포기하는 ‘펭귄 아빠’도 있다고 했다.
타임스는 악명 높은 자녀교육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는 한국인들의 조기유학 열풍이 중산층까지 확대되면서 미국보다 비용이 덜 먹히는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중국 등이 유학국가로 각광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러기 아빠의 행선지가 다양해진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도 미국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한국의 기러기 아빠 실태를 이미 7년전 3개면에 걸쳐 심층보도 했다. 이 신문은 강원도의 기러기 아빠 김 모씨가 볼티모어로 유학 간 자녀와 아내를 오랜만에 찾아갔지만 아이들이 자기를 마치 삼촌 대하듯 했고, 아내도 기자에게 “남편은 내가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는다”고 토로했다고 전했다.
한국은 전통적인 가부장제도의 나라이다. 온 가족이 아버지를 떠받든다. 아랫목은 항상 아버지 차지이고 맛있는 반찬도 우선적으로 아버지 몫이다. 예전엔 첩도 맘대로 거느렸다. 최근 ‘명퇴바람’에 아버지 권위가 떨어졌다 했더니, 이젠 ‘돈벌이 현역’ 아버지들까지 팔자에 없는 홀아비가 돼 뼈 빠지게 번 돈을 처자에게 고스란히 송금하는 세상이 됐다.
한국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6년 영어를 배울 목적만으로 외국에 조기유학 간 청소년이 2만9,511명이었다. 2004년에 비해 2배, 2000년보다 7배 이상 늘어났다. 이들의 어학연수비 명목으로 2조2,000억원(약 20억달러)이 송금됐다. 편법송금까지 합치면 그 두 배에 달할 것이란다. 기러기 아빠들의 1인당 월평균 송금액은 418만원(약 4,000달러)이었다. 수입의 90%를 송금하고 남는 돈으로 먹고 살자니 외로움에 더해 건강도 챙기기 어렵다.
얼마 전 한국에서 기러기 아빠가 자살했다. 자기 아버지 묘소 옆 나무에 목을 맸는데, 유서에 “재산을 처분해 처에게 보내주고, 자살했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썼다. 필자는 3년 전 아들과 함께 시애틀에 온 한 교인이 서울의 기러기 아빠에게 아무리 전화해도 받지 않아 친척을 통해 알아봤더니 방에서 심장마비로 숨져 있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었다.
미국에는 그나마 기러기 아빠마저 없는 아이들이 늘어나 고민이다. 20년 전엔 전체 어린이 3명중 한명이 아빠 없이 살았지만 지금은 거의 두 명 중 한명으로 늘었다. 아빠가 사망해서가 아니라 미혼모, 이혼모, 양육의무를 저버리는 아빠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젠 미혼모가 이혼모보다 많아져 자기 아버지가 누군지조차 모르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 청소년들의 범죄율, 자살률, 10대 임신율 등 비행이 증가하는 중요한 원인이 아버지 부재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미국 아이들에게도 ‘호랑이 아빠’의 존재가치가 절실하게 됐다.
내일은 아버지날이다. 따로 아버지날조차 없는 한국의 기러기 아빠들에게 췌장암 시한부 삶을 사는 랜디 포슈 교수(카네기 멜론대학)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학교당국이 부탁한 ‘마지막 인생강의‘에서 그는 “결코 아버지가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애쓰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택하라. 어느 길을 택하든지 아버지가 항상 함께 한다고 생각하라”고 당부했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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