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 매니언(오른쪽)이 이웃 친구 에블린 라두니치와 ‘바레나’의 와인저장소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다.
최고급 은퇴 빌리지가 미전국에서 급성장 산업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호화 시설과 완벽한 서비스 그리고 고품격의 사교생활을 제공하는 이같은 시니어 엘리트 커뮤니티의 입주회비는 보통 100만달러, 아파트 크기에 따라 부부당 최고 4백만 달러까지 오르기도 하는데 융자 아닌 일시불로 지불해야 한다. 입주자가 사망하거나 퇴거를 원할 경우 입주회비의 상당부분은 유산에 속해지거나 돌려받을 수 있다. 5월중순에 오픈한 캘리포니아주 산타로사 인근의 은퇴 빌리지 바레나(Varenna)도 그중 하나다. 지중해 스타일로 아름답게 건축된 이곳의 입주회비는 1인당 34만5,000달러부터 130만달러, 이에 더해 유닛 크기에 따라 매월 2,724달러부터 5,485달러까지를 납부해야 한다. 물론 이곳은 은퇴자 누구나를 위한 곳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일까. 한 입주자는 애리조나에서 온 평범한 교사출신이지만 그에겐 두 아들이 있다. 첫째는 전 TV 방송국 앵커맨, 둘째는 하이텍 기업가다. 텔레컴 대기업에 자신의 회사를 판매하기도 한 둘째가 어머니의 입주비용을 부담했다.
미 전국에서 인기를 모으는 급성장 분야인 럭셔리 은퇴 빌리지 중 산타로사에 위치한 ‘바레나’의 전경.
입주회비 최고 200만달러·월 9천달러에도 대기자 명단 수백명
완벽한 서비스·초호화 시설·고품격 사교생활 갖춘 ‘지상의 크루즈’
바레나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는 다양하다. 애완견은 시간 맞춰 산보시켜주고 자동차도 빈틈없이 손봐준다. 아파트 실내장식에서 이사 후 짐 풀기까지 도맡아 주며 매일아침 모닝콜로 잠에서 깨워주는 가하면 시장갈 땐 운전사 딸린 캐딜락이 대령되고 와인 컬렉션도 온도 잘 맞춘 저장소에 잘 보관해준다.
높은 천장에 전망 탁 트인 아파트들은 대체로 널찍널찍하다. 바레나의 경우 가장 큰 유닛은 두 개의 매스터 베드룸과 오피스, 덴, 최신형 부엌을 갖춘 3,000스케어피트짜리. 아파트로는 크지만 5,000~ 8,000스케어피트 대저택에 살던 부유층 노인들에겐 살림을 대폭 줄인 셈이 된다. 아직도 저택 갖고 살 경제적 능력이 충분한 사람들이 왜 이런 단지로 입주하는 것일까.
“식사 배달이나 홈 헬스케어, 간호사 가정 방문 등의 서비스는 각자의 집에서도 다 누릴 수 있지만 80대가 넘은 노인들은 바로 그 저택에 갇힌 포로가 되기 쉽거든요”라고 미노인주택협회의 데이빗 슐레스회장은 설명한다.
바레나 같은 은퇴 빌리지에선 다양한 사교생활은 둘째 치고 양로서비스가 제공된다. 그저 은퇴자들의 거주지에서 한 단계 더 나가 양로원의 역할을 겸하는 것이다. 만약 입주자들이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거동이 불편해지면 자신의 아파트에 그대로 거주하면서 목욕에서 옷입기, 약먹기까지 등 수발을 받을 수 있으며 원하면 같은 동에 있는 보호입주 유닛으로 옮길 수도 있다. 대부분 빌리지엔 알츠하이머 환자를 위한 전용시설 ‘메모리-케어’도 갖추고 있는데 이같은 양로서비스는 종전 월 회비외에 별도의 비용 없이 제공된다.
미국의 럭셔리 은퇴 빌리지 중 최고로 꼽히는 곳은 스탠포드대학 인근 팔로알토의 ‘클래식 레지던스 바이 하이야트’다. 1987년부터 고급 은퇴단지 설립을 시작한 클래식 레지던스 바이 하이야트회사는 현재 미국 11개 지역에 21개의 단지를 소유하고 있다. 팔로알토의 빌리지는 2005년 오픈한 곳으로 니만마커스 등 고급상점들이 늘어선 스탠포드샤핑센터 건너편, 스탠포드대학 캠퍼스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가장 큰 유닛은 3베드룸, 3.5배스룸, 덴등을 갖춘 4,212스케어피트 규모로 모두 7개가 있는데 입주회비는 부부당 420만달러에 월 9,000달러, 물론 다 차있다. 하이야트의 21개 빌리지 중 플로리다 한 곳을 제외하곤 모두 입주가 완료된 ‘No Vacancy’(빈방 없음)일뿐 아니라, 팔로알토의 경우 입주희망 대기자 명단에 225명이나 올라있다.
퇴임하는 스탠포드 이사장 부부, 전 국방전관 윌리엄 페리(현재 스탠포드에서 국제안보를 강의중) 등 대학관련 입주자들이 다수인 이곳은 지역특성에 걸맞게 분위기도 학구적이다. 입주자강의위원회가 있어 페리 전 장관의 국제정세 분석 등 수준높은 강의도 주선하고 회고록 집필 클래스나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여행 등 교양프로도 연달아 제공되며 구내 도서관에는 입주자들의 저서만을 따로 진열한 서가가 비치되어 있다.
햇빛 밝은 아침나절, 아트 스튜디오에선 잿빛 머리의 여성들이 수채화 전시회를 준비하느라 분주하고 조금 떨어진 도서관에선 백발의 노인들이 월스트릿저널을 읽거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으며 그랜드 피아노가 놓인 천장 높은 거실을 87세의 은퇴한 실내장식가 허버트 라텟이 한가로이 가로질러 가고있고… 클래식 레지던스의 전형적인 일상의 한 단면이다.
그 사이사이 비스트로나 콜로네이드 같은 최고급 식당들이 식사를 제공하며 파티장, 와인시음장도 마련되어 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서비스는 다 제공되니 이사하는 날이라고 바쁠 것도 없다.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살다가 바레나로 입주하는 테스 매니언(80)이 해야 할 일도 회사가 보낸 와인과 스낵 등이 담긴 환영바구니나 접시들을 풀어보고 구내를 돌아다니는 정도다. 함께 따라온 중년의 딸이 감탄을 거듭한다. “여긴 노인들을 위한 리츠칼튼이예요. 우리 딸은 지상의 크루즈라고도 하지요”
한가지만 빼놓곤 완벽하다고 매니언도 동의한다. 함께 누려야할 남편이 없는 것이다. ‘바레나’에서 편하고 풍요로운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해온 남편은 2년전 파킨슨씨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잠깐 눈가가 젖던 매니언은 다시 미소 지으며 말한다. “그래도 이곳에 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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