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 전, TV에 나오는 앉아있는 소 도축장 화면 때문에 마켓에 가서 쇠고기 사기가 왠지 찝찝했었다.
설상가상으로 요즘은 미국에 사는 우리는 마치 미친 소의 고기만 먹는 것처럼 우리의 고국에서는 아우성이라 아이를 위해 곰국도 끓여야 하고 좋아하는 불고기도 해야 하건만 고기를 카트에 담을 수가 없다.
경기가 좋을 때는 이 집 저 집 모여서 주말이면 갈비도 구워먹고 소시지도 BBQ해서 푸짐했었는데, 고기 파동인지 경기 때문인지 동네에 냄새 나는 일도 줄어서 서글프다.
에스크로 사무실에는 바쁜 오전 시간이 지나 즐거워야 할 점심시간이 사실 제대로 지켜지지를 못한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비즈니스로 잠시 시간을 쪼개어 오기 때문에 스태프가 아닌 오피서들은 제때에 나가는 법이 없다.
따라서 배달을 시키거나 햄버거 같은 것으로 간단히 때우게 되는데, 그렇다고 ‘꼬리꼬리’한 냄새 나는 생선을 시킬 수도 없고 ‘30년 넘은 소로 만든 고기’일까 봐 먹지도 못하고 요즘 야채 위주로 본의 아니게 ‘채식 웰빙’을 하느라고 오후가 되면 배가 고파 난리들이다.
골치 아픈 파일이 있었는데 자상하신 바이어 K선생님이 점심을 맛난 갈비 정식으로 to-go해 오셨다. 시간도 지났고 늦게 먹고 배만 더 나올까 봐 함께 먹자고 권유하였더니, 직원들 반응이 영 아니다. 요즘은 고기를 안 먹으려고 노력한다나.
정작 그런 소리 들으면 귀가 얇은 권여사, 겁나서 쇠고기 요리 못하고 맨날 돼지 갈비, 김치찌개, 돈까스에 삼겹살 파티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 건지, 사실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유난을 떠는 건지 헷갈린다.
왜 우리는 이곳에 살면서 한국의 드라마도 봐야 하고 한국 축구팀의 경기도 봐야 하고 우리네끼리 패션도 신경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문화뿐만 아니라, 사업에도 당연히 본국의 영향이 압권이다. E-2로 커피샵이 유행이면 많은 교포들이 커피샵 오픈으로 난리고, TV에 웰빙 음식으로 뜨는 것이 있으면 블럭마다 전문 식당이 간판을 건다. 유행인 아이템의 비즈니스는 권리금이 상한가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투자 본전도 못 찾는 사태가 벌어지고 만다.
안타까운 것은 지구의 반바퀴를 돌아 이곳에서까지 우리의 멀고 먼 조국의 영향을 받는다는 현실이다. 여성들 머리 스타일에서부터 화장이나 옷차림은 물론 남자들의 패션과 머리까지, 심지어 식생활 문화까지 보이지 않는 막대한 영향권 안에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사업체의 유행 아이템은 물론이려니와, 개발의 붐까지 K타운이 미국의 메인 스트림을 따라 실제 조정이 되면서도 배후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수요와 공급의 이상 곡선이 그려진다. 이자가 오르고 내리는 것으로 구조는 연방의 조정에 따라 휘청거리고, 수요와 유행은 고국의 우산 밑에 있다는 것이 참으로 복잡하고 미묘하다.
촛불시위를 보면서 곰국도 못 끓이고 아이가 좋아하는 BBQ도 못하면서 그저 하루가 멀다 하고 돈까스만 튀겨내느라고 부엌이 엉망이다. 수십년을 살면서도 늘 고국에 대한 끈을 놓지 못하는 한심한 모습이 싫으면서도 마켓의 봄나물의 향을 맡으며 된장국을 끓이고 싶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녀석은 그렇게 파스타, 피자를 좋아하지만 그래도 김치 없이는 밥이 안 넘어가는 모양이다. 조그만 녀석이 밥에 김치를 얹어 먹는 모습은 영락없는 토종 한국인의 그것이다.
좋다는 예긴지, 싫다는 것인지, 부쩍 자주 식탁에 오르는 돈까스를 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에게 하는 말, 마미, 마미도 돈까스 마니아 됐어?
(213)365-8081
제이 권<프리마 에스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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