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시간은 45분이나 늘어나고, 응시료는 41%나 올랐지만 2005년부터 개정된 SAT는 종전보다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SAT를 주관하는 칼리지 보드가 자체분석자료를 통해 인정한 사실이다.
이는“담배를 피우면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부인해온 담배 제조회사가 마침내 이를 시인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1926년 처음으로 SAT를 만든 프린스턴의 심리학자 칼 브리검 조차 ‘SAT는 인종차별 도구’라고 고백하고 제작에 참여한 것을 후회한 것부터 시작해 수 백 편의 연구논문들이 표준시험의 목적, 정당성, 그리고 효율성을 비판해 왔다. SAT가 여학생, 소수민족, 외국학생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유대인 학생을 밀어내고 소위 ‘WASP”(백인-영국계-개신교) 지배세력 그룹을 형성,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SAT는 연간 40억 달러가 넘는 표준시험 시장에서 돈 맛을 본 칼리지 보드에 의해 “SAT 성적은 학생의 학업능력을 가늠하는 척도이며 그 시험점수는 최고의 시장가치”라는 허황된 점수 이데올로기로 승화되었다.
마치 시험점수가 뛰어나면 다른 모든 분야에도 우수하다는 것이 증명이나 되는 것처럼 말이다. “SAT 고득점자=우수한 학생”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결정적인 근거는 돈을 들여 시험 보는 요령만 터득하면 얼마든지 점수를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학생을 판단하는 기준에 비 인지적 요소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만들어 놓고 표준시험 점수를 절대적 잣대로 세뇌시키는 것은 시험시장 지배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정당화에 불과하다.
비 인지적 능력은 성격, 자신감, 지구력, 지혜, 동기유발, 목적의식, 관심사, 가치관, 정서상태, 문제해결 능력 등을 말한다.
이들이 표준시험보다 학생의 장래를 좀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비 인지적 능력 연구의 권위자인 윌리엄 새들래섹 교수(메릴랜드 주립대)가 그의 저서‘표준시험을 넘어서’에서 주장한다.
게이츠&멜린다 장학재단이 제공하는 밀레니엄 장학생 선발 시 사용하는 비 인지적 검사, 즉 문답형 에세이, 인터뷰, 주제토론, 포트폴리오, 환경극복 등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학생 전체를 살펴보려는 방법이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반면에 80년 전 백인 남학생을 위주로 한 칼리지 보드의 시험출제 방식은 인종, 문화, 사회적 다변화를 주축으로 하는 현실을 무시하고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
시애틀의 백인 남학생과 야키마의 히스패닉 여학생, 그리고 한국에서 갓 온 학생 등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험을 주어 평가하는 것은 개개인의 독특성과 차이점을 무시하는 난센스요, 나아가서는 인종차별, 성차별이다.
칼리지 보드는 대학의 움직임에도 무감각하기 짝이 없다. 개정된 SAT가 실시된 이후 웨이크 포레스트, 스미스를 위시한 41개 대학이 표준시험 점수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발표했고 이러한 대학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또한, 새로 추가된 에세이 시험이 채점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4년제 대학의 65%이상이 작문점수를 입학사정에서 고려하지 않고 있음에도 SAT 정당화 고집은 계속되고 있다.
신 자유주의 시장경제식 교육방침에 반기를 들고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며 촛불을 들고 길거리에 뛰쳐나온 한국의 용감한 10대 같은 학생들이 미국에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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