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리주 클락빌에선 여성교도소의 재소자들도 동원되어 모래주머니 쌓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미주리주 윈필드에서 모래주머니를 만들던 자원봉사자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10여년만에 최악의 홍수로 집과 논밭이 잠기는 재해를 당하며 사람들은 또 한 번 자연의 힘 앞에 숨을 죽인다. 자연의 원시적 분노 앞에 인간의 최신 문명이 얼마나 허약한가를 새삼 깨닫는다. 그렇다고 속수무책으로 물속에 함께 잠길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손에 손을 맞잡고 힘과 마음을 합해 피해를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일 뿐이다. 무섭게 불어 오르는 강물, 곳곳에서 붕괴하는 둑…그래도 우리 마을의 범람만은 막아보기 위해 미시시피 강변 미주리주 캔튼지역의 온 주민들은 밤을 새가며 모래주머니를 쌓아 올리고 있었다.
미주리주 캔튼 마을에서 밀짚모자를 쓴 아미시 자원봉사자들이 미시시피 강둑을 따라 모래주머니를 쌓고 있다.
그들은 달빛 아래서 모래주머니를 쌓고 있었다. 교육감과 판사, 경찰관과 자동차 정비공, 밀짚모자를 쓴 아미시 신도들과 버드와이저 티셔츠를 입은 청년들이 마음을 모아 마치 성난 신 ‘미시시피’에게 평화의 제단을 쌓고 있는 듯 보였다.
지난주의 어느 한밤중, 들리는 소리라고는 모래주머니를 싣고 오는 수송차의 엔진 음, 모래주머니를 들어 올리고 던지고 받을 때마다 공기 속을 가르는 쉬익, 퍽, 윽의 외마디 소리, 그리고 멀리서 가까이서 위협하듯 달겨드는 강물의 울부짖음뿐이다.
“여기 앉아서 들어 보세요. 평소엔 강물소리가 이렇게 무섭게 들린 적이 없었어요” 라고 이 지역 비상체제관리 책임자인 짐 크렌셔는 말한다.
그의 뒷쪽으로 커다랗게 부푼 달이 검은 강물과 하얀 모래주머니들을 밝게 비추어 준다. 높게 쌓인 모래주머니들 속엔 모래 이상의 그 무엇이 담긴 듯 하나하나가 제각기 빛을 발하고 있다.
마을의 둑을 따라 살펴보면 낡아빠진 모래주머니의 조각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1993년 홍수때 강의 범람을 막아 이곳 캔튼 마을을 지켜준 모래주머니의 잔해다.
사실 모래주머니는 너무 단순하다 못해 원시적이다. 아이폰의 클릭 한번으로 자신의 위치를 위성사진으로 수신할 수 있고 강물의 수위 변화를 정확히 추적할 수도 있는 이 하이텍 문명의 시대에 우린 아직도 가장 기본적인 - 주머니에 모래를 퍼 담아 땅 위에 쌓아 올린 후 제발 범람을 막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 이 대비책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육군공병대 웹사이트에는 모래주머니에 대한 설명이 올라와 있다. “모래주머니는 홍수피해를 막을 가장 견고한 도구입니다” 미시시피강 유역의 대부분 주민들은 모래주머니 만드는 법에 대해서 통달하고 있다. 주머니에 가득이 아닌 절반 넘게만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모래주머니에는 모래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가 필요하다. 사람이다. 강을 따라 수십마일 뻗어가는 79번 하이웨이 인근의 작은 마을들엔 요즘 소방서, 차고 그리고 길모퉁이 등에 주민들이 모여 있다. 희망과 흙을 섞는 의식, 모래주머니 자원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미주리주의 또다른 마을 클락빌에선 밴달리아 여성교도소의 재소자들이 나와 며칠째 삽질하고 패킹하며 모래주머니를 만들고 있다. 검은 안경을 쓴 교도관들의 감시아래 ‘WR’(노동 석방)이라는 스탬프가 찍힌 셔츠를 입은 이들은 하루 일을 마치면 밴에 실려 40마일 떨어진 교도소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불어 오르는 강물을 두렵게 바라보며 부지런히 모래주머니를 쌓는 동안만은 이곳 주민들과 한 마음으로, 함께 땀을 흘린다.
이웃 마을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재소자들과 메노신도들(개신교의 한 종파), 한창 놀 시간의 아이들, 쉬어야할 노인들, 모두 비상 신호를 듣고 달려와 지는 해와 불어 오르는 강물에 맞서 죽어라 모래주머니를 만들고 있다.
몇주전까지 미시시피 강변의 농업 및 칼리지 타운이었던 캔튼 마을의 평화로운 시절은 사라져 버렸다. 강변 공원과 철로를 이미 삼켜버린 탐욕스런 물결은 이제 캠튼의 3마일 제방을 노리며 넘실거리고 있다.
타운의 비상관리국은 이미 대피령을 내리면서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래주머니 작업의 자원봉사를 호소했다. 기자가 돌아본 캠퍼스와 주택지역은 텅 비어 있었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운타운에 모여 있었다. “나 뭐해요? 뭐 할까요?”라며 어른들을 보채며 따라 다니는 11세 소년 달튼을 비롯해 주민들은 밤 9시가 지났는데도 일손을 멈추지 않는다. 벌써 85만개의 무래주머니를 쌓았지만 마을을 지키려면 이것으론 부족하다. 얼마나 더 필요한지, 그것조차 정확히 알 수 없다. 50파운드짜리 모래주머니를 베개 던지듯 쉴새없이 던지고 쌓으며 최선을 다할 뿐이다.
어느새 다시 새벽이 밝아온다. 밤새도록 달빛 아래서 그치지 않았던 삽질덕분에 오늘 오후엔 5만개의 모래주머니가 준비될 것이다. 시정부의 관리들, 이름 모를 지역 주민들, 아미시와 메노교의 젊은 신도들, 그리고 11세 소년 달튼까지도 아직은 전혀 집으로 돌아갈 기미가 안 보인다.
<뉴욕타임스-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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