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국 간의 외교에서 매우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상대방을 놀라게 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정상회담과 관련된 것에 대해선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해도 사전에 수차례 논의되고 합의된 것만 발표해서 잡음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례다. 정상회담 시기에 대해서 ‘양국 정부 동시 발표 시까지 엠바고(보도제한)’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백악관의 데이너 페리노 대변인이 우리 정부와 상의 없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다음달 방한하지 않으며 주요 G8정상회의에서 만난다고 발표한 것은 외교적 결례에 속한다. 우리 정부가 페리노 대변인의 발표 후에 허겁지겁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일본 G8 정상회의에서 만난다는 사실을 발표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페리노 대변인은 한국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말도 했다. “부시 대통령이 8월 아시아를 방문할 때 분명히 다른 (방한)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한 것은 마치 강대국이 시혜를 베푸는 듯한 뉘앙스였다. 백악관의 발표대로라면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와 관련 없이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희망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에 대해 소극적인 것으로 보여진다. 만약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의 8월 방한을 좀 더 실용적인 측면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이 절대선인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다음달 G8 회의에서의 한미 정상회담도 그렇지만 퇴임을 앞둔 부시 대통령의 8월 방한에서 중요한 성과가 나오기 어렵다. 양국이 추가 협의까지 진행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이보다 더 어려운 문제에 대해 합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재 이 대통령이 처한 상황은 미국이 바라는 미사일방어체제(MD),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등에 대해 속 시원하게 대답해 줄 수 있는 상황이 못된다. 또 굳이 퇴임하는 부시 대통령에게 중요한 ‘선물’을 할 필요가 없다. 1년 가량 아껴뒀다가 내년 1월 취임하는 44대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를 맺을 때 좋은 교환물로 사용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캠프 데이비드로의 초청을 이 대통령에게 베풀며 쇠고기 협상을 유리하게 이끈 것을 상기해 보라. 지지율이 20%대인 부시 대통령이 최근 해외 순방을 자신의 8년 통치를 마감하는 고별 여행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부담스럽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9일부터 8일간 유럽 순방을 하면서 별 성과도 없이 과거 절대국가 황제처럼 호화스러운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오전 11시까지 공식 일정을 갖지 않는 날도 있었고, 로마에선 오후 4시에 모든 행사를 끝내기도 했다. 8월 8일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계기로 방한을 고려하고 있는 부시 대통령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 대통령을 만나기를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그럴 여력이 없다. 정국 상황은 엄중하고 경제는 심각하며 여론은 사분오열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답방 합의에 얽매여 부시 대통령의 방한에 매달릴 이유는 전혀 없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부시 대통령이 아니라 그의 후임자와 4배나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부시 대통령 초청에 쏟는 에너지는 최소화하고 차기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관계 비전을 구상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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