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신호등이 있을까 아니면 파수꾼이 있을까 국경 통과 할때처럼 이민국이 있을까 잠간 생각에 잠겨 본다. 아마도 그곳은 오직 일방통행 뿐인 짧기도 하고 때론 긴 외나무 다리 이기도 할것입니다. 손잡고 함께 가는 곳이 아니며 나홀로 움켜지고있든 온갖 것들 다 버리고 남겨두고 미련없이 매정하게 돌아 보지도 않고 가기만하지 돌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미궁의 외길입니다. 이길을 가기위해 인간은 태어나고 떠나고 또 태어 나면서 짧은 삶을 포장해서 온갖것들 즐기고 누리다 때가오면 말없이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는 여정이 삶이구나. 우리들은 사는동안에 선조들이 만들어 놓은 좋은 것들을 즐기며 이용만 하고서 가는 것은 아닌지 곰곰히 생각 해보자. 옛선조들께 정말 고마움을 느낀다,
세상이 발전하면서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문명의 이기들을 창출해내고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너무 복잡해 지니까 한편 구속을 받는것 같기도 합니다. 삶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것인지 간단한 답을 쓸수가 없는 무궁무진한 말씀들이 있을 것이다. 호흡이 있는자는 살아 있다고 한다, 그러면 생각은, 의식은 살아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의 주인 일 것이다. 생각은 기억으로 저장해 나가고 있다, 기억의 저장 창고는 참으로 넓고도 크다. 차곡 차곡 아직도 쌓고있다. 필요한 것도 필요하지 않는것도 함께 모아 가는구나.
열심히 일해서 많은 재물을 얻어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이 우리들의 목표 중의 하나 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행복의 잣대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함께 행복하기를 원하는 사람과 나 혼자만 행복하기를 원하는 사람, 남을 정복하고 부리기를 원하는 사람,배풀기를 즐겨 하는 사람,가질려고만 하는 사람, 퍼 줄려고만 하는 사람,여러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기에 많은 희비의 사건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생동감이 넘치는 살아 있는 현장입니다. 삶과죽음의 마지막 순간은 잠간이나마 이승과 저승을 함께 딛고있는 아슬아슬한 장면 같기도 하구나.
이승에서 눈물로 영영 떠나보냄을 슬퍼할때 저승에서는 어서 오라고 기뻐하며 반기는 장면이 동시에 떠오르기도 합니다. 즉 한쪽이 닫히면 한쪽이 열리는 세상 만사의 원칙이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것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삶과 죽음은 언제나 함께하고있습니다.정말 찰나에 갈라집니다. 종이 한장 차이의 가까운 사이 입니다.
나는 왜 살아 가고 있는지 질문을 던져보자! 첫째로 꼭 필요한 인간이 되자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설계 하여야 되겠습니다. 때론 열심히 노력 해도 아무런 열매도 얻지 못하고 부풀었든 희망 마져도 사라져 버릴때도 있습니다. 의지가 약할때는 절망하며 죽음의 문턱도 기어 올라가 기웃 거릴때가 있습니다.
삶자체가 행복하지 못하고 상처 투성이 만신창이 되여서 희망을 상실하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때가 가장 위험할때입니다. 죽음 자체만 생각하면 무서운것이 틀림 없습니다만 우린 죽음이 없으면 결코 쉼도 없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그뒤의 찬란한 모습도 볼수있으며 드디어 주님과 만나 교제를 할수 있게 되기에 기쁨이 증폭 되어 얼굴에 환희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지난 4월말에 박효진장로님의 간증 말씀속에 함께한 주님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교도관으로 근무할때 사형수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예수님께서 하셨든것처럼 믿음의 자녀들을 생산하시고 고아로 두지않고 친아들 처럼 느끼면서 마지막 가는 사형수들의 밝은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 주셨습니다.
복음이 심어지지 않은 사형수들의 마지막 비참한 장면들과 너무나도 대조적인 장면들이었습니다. 복음의 힘이 위대하구나,믿음의 아들 김용진, 여자사형수 강영리,불교에 심취한 도사 이야기 특히 용필이의 두가지 모습, 예수님 영접한 후와 이전의 대조적인 두모습, 마지막 잠간 10분내지 20분간의 간절한 기도로 독기찬 용필이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심어주신 박효진장로님의 그모습 상상하면서 복음의 놀라운 힘을 확신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우리를 지으시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면서 탄생시킨 자녀들이지만 고분고분 순종하는자 보다 어긋나는 짓을 하는 자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먼저 깨달은 자들은 아직 복음을 영접하지못한 우리형제들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끝까지 하여야 할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며 우리들의 삶의 목적이기도 분명합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잊어 버렸을때 우리들은 표류하며 기진 맥진하여 삶의 의욕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이 분명할때 날마다 기쁨이 솟아 등대의 역활을 하게될것입니다. 등대는 우리의 삶을 안전한 포구로 인도하는 인생의 불빛입니다.지난세월 억척같이 용감하시던 어머님 5년6개월간 중풍으로 말문이 닫히시고 많은것을 잊어시고 외로움을 아버님의 지극하신 간병으로 조금씩 위로 받고 계시든 어머님 화려했든 젊은시절 강한의지로 우리들을 키우시든 사랑의 어머님의 모습이 꺼져가는 촛불처럼 깜박 거린다. 마지막 임종 직전의 소식을 듣고 미국에서 서울까지 정신없이 달려가든 나의 모습, 마지막 말씀을 듣고 싶고 하고싶어서 시간을 움켜쥐고 비행기를 재촉 하고싶었든 그때. 병원 응급실 심장 박동을 체크하는 그라프 기계의 화면을 지켜보면서 마지막장면 삐-------소리와 함께 그라프는 일직선만 그리고 있는것이 호흡이 끝났다는 신호이며 우리인생의 끝이였음을 알려주는 마지막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터져나오는 가족들의 마지막 통곡소리들은 저먼곳 하늘나라에서평안한마음으로 웃음 지으시면서 들으시리라, 난 이제야 목적지에 잘도착하여 성대한 환영식에 참여하고 있으니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는 음성이 들려온다. 이것이 그립든 어머님과의 마지막 작별 인사였습니다.
그리고 8년이란 세월이 흘러 다시 아버님의 임종을 맞이하였습니다.아버님께선 무병으로 장수 하셨습니다, 90세에 세례를 받으시고 주님 영접 하셨습니다. 죽음을 초월 하시고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으시겠다고 작정하시어 곡기를 끊으시고 마지막 한방울 에너지 까지도 모두 소모하시고 아주 조용히 주무시는것처럼 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몇시간전에 창밖을 보시면서 열심히 손짓하셨습니다. 그곳에 어머님이 오셔서 어서오라고 기달리고 계신다고 하시면서 힘없이 고개를 끄떡 끄떡 하신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아버님 떠나신 자리가 생각보다 무척 크게 느껴 졌습니다. 가슴속에 반은 구멍이 난것 같았습니다.
다음차례 순번표를 받은것 처럼 죽음이 성큼 내 앞에 다가 왔습니다. 반갑지 않는 손님이지만 결코 뿌리칠수 없는 함께 가야할 친구입니다. 오늘도 그 죽음과 함께 동행하면서 아직 많이 기다려 주어야 겠어 난 할일들이 아직 남았으니까 조금도 급할 필요가 없단 말이야, 하늘나라의 입학식은 당분간 참여하고싶지 않다고 외치면서 꿈속에서 벌떡 일어나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계속해서 잠이 깊어져 깨어나지 않을때도 있을것이다. 그때가 언제일지 알수가 없으니까 잘 준비해 나가야지 갑자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싶지는 않습니다.
건널목의 빨간 신호등이 우리를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삶의 시간입니다. 이렇게 소중하고 귀한 이시간을 낭비 하지말고 휼륭하게 설계해 함께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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