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다는 금융위기의 태풍이 지나면, 미국 금융시장의 틀이 크게 바뀔 것이다. 여러 변화 중 하나는 월스트릿을 풍미했던 순수 투자은행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것이다. 굴지의 투자은행들이 이미 문을 닫거나 은행 지주회사로 회사 형태를 바꾸었다.
미국의 5대 투자은행 중 베어스턴스와 메릴린치는 JP 모건 체이스와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각각 넘어갔고, 리먼 브라더스는 파산절차를 밟고 있다. 살아 남아있는 골드맨 삭스와 모건 스탠리도 지난 달 상업은행으로 전환을 선언했다.
이들 투자은행들이 지난 1999년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장벽을 허문 그래스 스티걸 법안 개정으로 상업은행과 겸업을 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투자은행으로 남았던 이유는 상업은행보다 정부의 규제와 간섭을 덜 받으면서 위험도가 높지만 수익이 많이 남는 투자를 통해 한꺼번에 큰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만들어 시장에 돌린 파생상품이 시한폭탄이 되어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하자, 지난달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도움이 받기 위해서 은행 지주회사로 변경한 것이다. 투자은행은 연방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규제만 받는 반면, 상업은행은 여러 정부기관의 간섭과 규제를 받고, 투자활동에 제약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이들 투자은행은 생존을 위해, 은행 지주회사로 회사 형태를 바꾼 것이다.
이번 금융위기의 주범 중 하나는 이들 투자은행들이었다. 이들 투자은행은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해서 투기성이 강한 금융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돌리거나 이 상품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담보로 만든 파생상품, 즉 ‘모기지 담보부채권’(Mortgage Back Securities)을 비롯한 ‘자산 담보부채권’(CDO: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s)이 문제였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이 만든 ‘크레딧 디폴트 스왑’(Credit Default Swaps)이라는 유사 보험상품이었다.
이 상품은 모기지 등 담보물 혹은 회사채에 문제가 생기면, 이 상품을 만든 측이 상품의 구매자인 투자자에게 전액 보상하겠다는 일종의 보험계약이다. 정부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보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 투자상품 시장의 규모는 무려 60조달러 정도로 미국 국채 규모보다 3~4배나 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제는 보험회사와 달리 투자은행들이 이 상품을 팔 때 나중 일이 잘못되어 투자자에게 배상해야 할 상황을 대비한 자기 자본을 별로 준비해 두지 않았다는 데 있다. 결국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자 모기지 담보를 토대로 세워진 이들 파생상품 시장 전체가 무너진 것이다.
이들 투자은행들은 파생상품으로 떼돈을 벌 때는 정부의 규제가 자본시장에 해가 된다고 탈규제를 역설했다. 앨런 그린스펀이나 부시 대통령 같은 사람도 이들의 의견에 적극 동조했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심화되자 정부는 금과옥조로 삼던 시장 불개입 원칙을 버리고 대규모 구제 금융안을 투입하는 등 불을 끄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이번 금융위기로 작은 정부와 시장의 자율이라는 미국식 자본주의에 중대한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김성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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