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문화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 대만, 중국 등 동양에서 옛날부터 선, 색, 공간의 아름다움을 빌어 자연과 인간의 감정이나 내면세계를 사실적 또는 비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조형예술로서 전승되어 왔다.
동양 꽃꽂이의 특징은 내추럴하고 형태와 색이 단조로우며, 정적으로 3∼7개 정도의 다소 적은 종류와 적은 양의 재료로 구성한다. 서양식 꽃장식보다 화려하지는 않으나 선을 이용한 테크닉으로 내적인 미를 창조하는데 주력해 왔다.
지난 시간에 말했듯이 서양의 꽃꽂이가 장식적인 면을 강조하면서 발전하였다고 했는데 동양 꽃꽂이에는 꽂는 사람의 사상과 감정이 표현되어야 하며, 극히 짧은 시한성을 가지는 공간예술인 만큼 작품제작에 있어서 시간의 절대성과 정신적인 면을 중요시 한다. 현대에 와서는 굳이 동 서양의 스타일을 구분 짓기보다는 용도와 목적을 생각하여 공간에 어울리도록 디자인을 하는 것이 플라워 디자인을 즐기는 방법이다
▲한국 꽃꽂이
한국의 꽃 문화는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광복 이후로 나눌 수 있는데 삼국시기까지는 종교(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고려시대에 이르러 종교의식 일부인 공화와는 구별되는 감상 위주의 꽃꽂이가 발생했다. 고려의 귀족들은 집안에 불당을 차려 놓고 생화를 병에 꽂아 장엄미를 나타내고, 믿음의 무아경 속에서 생활했다는 것으로 보아 불교에 따른 꽃꽂이도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부분적이기는 하나 꽃꽂이에 관한 책이 저술되고, 또 전문서적이 아니더라도 꽃, 꽃꽂이, 분재, 분경 등을 다룬 저작이 등장하였다. 또한 수파련이라 하여 큰 잔치 때 음식 위에는 종이꽃을 꽂았고, 궁중의 연회 때 사람들이 꽃을 꽂고 참석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 후기 궁중의식에 사용된 꽃꽂이는 당시 최고의 장인들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으며 궁중의식 도에서는 천장에 매단 새로운 형식의 꽃꽂이도 볼 수 있다. 당시 꽃꽂이가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음을 풍속화, 탱화, 화훼화 및 병풍 등의 그림에서 엿볼 수 있다.
광복 후 1945년 이후로 몇 분이 꽃꽂이를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나 1950년 한국 전쟁의 발발로 잠시 침체되었다. 1960년대 꽃꽂이라는 용어로 통칭되어 여성들의 취미활동과 직업으로 발전하였고, 당시 여성 잡지와 각 일간지의 여성 란에 화보로 등장하면서 꽃꽂이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1970년대를 전후하여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할 때 해외에 파견된 주재원들의 가족에 의해 일본의 이케바나가 유입되었으며 이 시기에 많은 꽃꽂이회가 창립되고 협회전, 개인전이 열리는 등 꽃 예술에 대한 문화사를 정립한 것도 이 시기였다. 1990년대 한국에서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고 주거환경이 현대화 되면서 서양의 꽃꽂이가 유입되어 우리의 꽃 문화와 혼합된 과도기적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전문 꽃꽂이 잡지도 발간되었다.
1996년에는 미술사조의 영향과 꽃이 주체가 되어 표현하는 예술로서의 학문적 체계를 세우고자 꽃예술 전문인들이 이론과 실기를 연구하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여러 대학에서 꽃예술 분야의 학과를 개설하고 전문가를 양성하게 됐다.
제넷 최
<블룸피아 대표>
www.bloomp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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