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높은 일명 ‘투올 슬랭’ S-21 형무소의 소장을 지내면서 1만6,000명의 남녀와 어린이들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살해한 카잉 구엑 에아브(66)이 30일 재판정에 출두했다.
캄보디아 ‘킬링 필드’에서 17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크메르 루즈 정권이 30년만에 마침내 법의 심판 앞에 섰다.
악명 높은 일명 ‘투올 슬랭’ S-21 형무소의 소장을 지내면서 1만6,000명의 남녀와 어린이들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살해한 카잉 구엑 에아브(66)의 재판이 30일부터 시작됐다.
크메르 루즈의 만행이 절정을 달하던 1976년에서 1979년사이 그가 다스렸던 S-21 형무소는 죄수들이 울부짖는 소리로 메아리쳤다. 수감자들로부터 반혁명 활동을 했다는 ‘자백’을 받아내는 임무를 맡은 에아브는 전기고문과 물고문, 구타를 일삼고 특히 부모가 보는 앞에서 자녀들을 형무소 3층에서 내던져 죽이기도 했다. 간수들은 죄수들을 몸에서 피를 빼내어 죽게 하기도 했고 철곤봉이나 파이프로 목 아래를 때려 구덩이에 쳐 넣은 후 칼로 목이나 배를 베어 살해하기도 했다. 기소문에 따르면, S-21 형무소에 도착한 죄수들은 모두 사형을 앞둔 사람들이었다.
캄보디아는 역사적인 국제재판에서 에아브를 시작으로 모두 다섯명의 크메르 루즈 지도자들을 법정에 세울 계획으로 크메르 루주 정권 하에서 폴 포트에 이어 2인자로 군림한 누온 체아, 국가원수 키우 삼판, 전 외무장관인 렝 사리와 그의 아내이자 사회부 장관을 지낸 렝 트리드 등이다. 캄보디아의 ‘노동자 농민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170만명을 처형하거나 굶어죽게 한 크메르 루주 정권의 최고 지도자 폴 포트는 1998년에 사망했다.
수학 교사 출신인 에아브는 정권이 붕괴된 후 가명아래 교직에 복귀하고 기독교로 개종해 살다가 1999년 우연히 영국 기자에 의해 발견돼 체포됐다.
그의 변호사 프랑소아 루스는 에아브가 피해자들과 캄보디아 국민에 사죄하기를 바란다고 지난 2월 말했다.
이날 에아브는 프놈펜 교외에서 열린 캄보디아 대량학살 재판소에서 반인도적 범죄, 전쟁 범죄, 고문 및 살인죄 등의 혐의로 고발한 45페이지 기소문을 무표정으로 경청했다.
S-21형무소에서 살아나온 소수의 생존자 중 한명인 반 나드는 피고인이 혐의를 인정하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진정될 것이라면서 우리는 배상이 아니라 정의를 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문으로 불구가 된 생존자들을 비롯해 약 500명이 이날 재판에 참석했다.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 간에 거의 10년 가까운 협상 끝에 지난 2006년 설립된 학살재판소는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다. 인터내셔널 앰너스티 등 인권단체들은 재판의 대상이 다른 크메르 루즈 지도자들도 포함시키도록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중에는 캄보디아 훈센 총리의 정부 관리들도 있다.
<우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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