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단상-박용진 목사(어스틴 제일 장로교회)
며칠전 필자는 아내와 함께 예쁜 정원이 있는 한 교인집을 방문했습니다. 집 주인되는 부인은 우리를 반갑게 맞으며 따끈한 차 한잔을 내왔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봄날 아침에 차 향이 그득한 방에 앉아 모처럼 한담을 나누었습니다. 지나온 세월의 이야기며 식구들 이야기 등 마치 오랫동안 지내온 친구처럼 우리의 이야기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계속되었습니다. 알수 없는 푸근함이 필자와 아내를 그 집에 오래 묶어두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만나기로 한 다음 약속시간이 없었더라면 점심식사에 저녁까지 먹고 일어섰을지도 모릅니다. 그 집은 고국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 같은 집이었습니다. 별로 크지않은 작은 집인데도 벽이며 구석마다 필자 어릴 적에 고국서 보았던 그런 물건들과 그림들이 잘 배치되어있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꼼꼼히 모았을 성싶은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멋진 박물관처럼 전시되어있었습니다. 한글성경구절을 목판에 새긴 서너개의 액자들은 집안 분위기를 경건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예쁜 화초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두어 평 남짓한 정원까지 주인의 부지런한 손길이 곳곳에 묻어났습니다. ?
어스틴에 온 후로 이렇게 우리문화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도록 가꾼 집을 참 오랫만에 보았습니다. 유학생활에 이민생활까지 각박하고 정신없는 생활을 달려오다보니 잊고 살았던 우리네 어릴 적의 아름다움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특히 지금은 쓰지 않는 주판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상업시간에 선생님께 꿀밤 맞아가며 주판배우던 추억이 갑작스레 떠올랐습니다. 신기하게도 어릴 때 시골에 가면 할아버지 집 대청마루에서 늘 보던 다듬이 돌과 방망이도 거기 있었습니다. 하얀 이불보를 다듬이돌 위에 놓고 열심히 다듬이질을 하시던 할머니 곁에서 낮잠에 빠져들던 필자의 아이적의 추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타악기 소리처럼 격렬히 들리던 방망이 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잠에 떨어졌다가 다시 잠이 깰 때쯤 기차소리가 달려오듯 커지던 생각이 나서 얼마나 마음이 따뜻해지던지요.?
아이에게 엄마의 향기는 항상 그리움과 평안함을 주듯 우리에게 고국의 향기가 그런가 봅니다. 격랑처럼 흘러가는 현실의 분주함을 잠시 멈추게 한 정원이 예쁜 그 집이 감사하기만 합니다. 어릴 적의 추억에 흠뻑 빠져 편안히 차 한잔의 여유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뜨거운 여름 한낮에 길을 가다가 시원스런 원두막을 만나 참외먹고 땀식히고 가는 기분이더군요.?
필자교회가 설립된 후 몇 달 셋방살다가 처음 단독예배당을 얻어 감사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잔치준비를 하는 교인들은 꿈인가 생신가하여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손님들이 각지에서 찾아와 축하하니 화환과 축전을 받기에 손이 부족할 지경입니다. 이처럼 과분한 축복을 받아도 되는건지 얼떨떨하기만 합니다. 고국의 향기가 가득했던, 정원이 예쁜 그 집처럼 필자네 교회가 영혼의 향기가 가득한 집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고향잃은 이들과 인생의 방향잃은 이들이 이 집에 와서 주님과 정원을 함께 걷는 평안함이 있기를 소원해봅니다. ?
시편을 쓴 이가 외칩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 주의 정원에서 영혼의 향기를 맛보는 이들이 많아지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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