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백만원이란 꿈도 꿀 수 없이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오죽하면 그 시절 ‘나에게 백만원이 생긴다면’이란 제목의 대중가요까지 나왔을까.
평생이 걸려도 만져볼 수 없는 액수, 아무리 뼈 빠지게 일해 모은다 해도 도달할 수 없는 거대한 산맥의 정상에 백만원이라는 숫자가 나를 비웃으며 서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사람들에게 그런 꿈같은 액수는 얼마일까? 만달러? 십만달러? 백만달러?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하여튼 나에게 그런 꿈의 액수가 생긴다면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
내가 아침마다 오르는 그리피스 하이킹 트레일 꼭대기에서 LA를 내려다보면 다운타운의 아무리 멋진 빌딩도 레고 블럭 같다. 불경기를 비웃으며 새로 나온 스포츠카가 웨스턴 길을 달려도 위에서 보면 장난감 미니카에 불과하다. 그러니 걸어가는 사람은 오죽할까. 그 사람 마음 안에 세계를 집어삼킬 야망과 꿈틀거리는 욕구가 가득하다 해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저 조그만 점이다.
자칫 쩨쩨해지려던 마음을 한없이 너른 관조의 시각으로 바꾸어놓는 이 아름다운 그리피스 공원은 누가 만들었을까? 공원 한 끝에 서있는 작은 기념물… 바로 이 그리피스 공원 일대, 무려 3,000에이커 이상(전체 공원 면적은 4,210에이커)의 개인 사유지를 아낌없이 LA 시에 헌납한 그리피스 대령의 동상이다.
그는 영국 웨일즈 사람으로 미 대륙의 뉴욕에 빈손으로 이민을 왔다가 캘리포니아 금광으로 거부가 된 사람이다. 미국에서 가장 큰 시립공원으로, 봄에는 봄대로 가을에는 가을대로 계절 따라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줄 뿐 아니라 자연을 무대로 하는 온갖 이벤트가 펼쳐지는 이 공원이 한 사람의 기부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땅뿐만 아니라 오픈 공연장인 그릭 디어터와 천문대를 지을 기금도 그의 지갑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리피스 대령의 개인사는 그리 모범적이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이민자로 시작된 그의 삶 역시 대부분의 한인 이민자들이 겪는 것처럼 다양한 직업 편력과 성공-실패의 반복이라는 높낮이를 두루 거쳐야 했다. 또한 ‘대령’으로 복무한 기록은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게다가 부인에게 총을 쏜 사건으로 샌쾌틴 감옥에서 2년을 지내기도 했다.
대략 100년 후에 살고 있는 우리 눈에 지나간 한 사람의 인생이 험하게 보인다면 그 사람이 겪었을 마음의 행로는 더욱 더 울퉁불퉁하였으리라. 그 힘든 길에서나마 커다란 손을 꺼내어 기부를 할 때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이곳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휴식의 장소로 사용되어지기를 바랍니다. LA를 더 행복하고 더 깨끗한 좋은 도시로 만들어가는 것은 나의 의무입니다. 이것으로 내가 이 사회에 지은 빚을 갚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땅의 면적은 일정한데 누구는 많이 가지고 누구는 없다. 이 세상 돈도 누구한테는 넘치게 많고 누구한테는 없다. 많이 받은 사람은 없는 사람과 나누어 가지라고 주신 것일 게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하이킹 트레일이 시작되는 한편에 가만히 동상으로 서 있는 그리피스 대령에게 눈을 찡긋하며 “땡큐!”하고 말했다. 나에게 백만원이 생긴다면, 나는 돈을 그렇게 쓰고 싶다.
김범수(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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