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전에서 통렬한 왼발슛으로 동점골을 터뜨리는 주세페 로시. 미국시민인 로시는 미국 대표팀의 오퍼를 거부하고 이탈리아 대표로 뛰겠다는 꿈을 이뤄냈다.
미국 울린 ‘미국 아이’ 주세페 로시
미 대표팀 고사하고 아주리전사로 활약
만약 그가 블루가 아닌 화이트 유니폼을 입고 있었더라면….
16일 남아공화국에서 벌어진 2009 FIFA(국제축구연맹) 컨페더레이션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미국은 다 잡았던 대어를 놓친 아쉬움을 ‘곱절’로 느껴야 했다. 디펜딩 월드컵챔피언 이탈리아를 맞아 전반 33분 한 명이 퇴장 당해 10명으로 싸우는 와중에서도 랜든 다나븐의 페널티킥 골로 1-0으로 앞서며 기념비적인 대 파란을 노렸으나 후반 11분 이탈리아 벤치에서 교체멤버로 투입한 ‘비밀병기’ 주세페 로시가 필드에 나서면서 이변의 꿈이 단숨에 허물어져 내리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로시는 투입되자마자 센터서클 지점에서 미국선수의 볼을 가로챈 뒤 10미터 가량을 드리블하다 강력한 30야드 왼발슛을 뿜어 그림같은 동점골을 뽑아냈고 이탈리아가 2-1로 역전에 성공한 후반 종료직전 인저리타임에는 안드레아 피를로의 크로스를 깔끔하게 오른발 해프 발리슛으로 때려 넣어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미국으로선 승부에서 진 것만으로도 분한 데 더욱 아쉬움이 두배로 느껴진 것은 바로 로시가 적군이 아니라 아군이 됐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로시는 뉴저지주 티넥에서 태어나 클리프턴에서 자라난 ‘아메리칸 키드’로 미국대표로 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4년전 당시 미국팀 감독이던 브루스 아레나는 당시 18세이던 로시에게 미 대표팀 멤버로 독일월드컵에 뛸 수 있도록 프리월드컵 캠프에 초청하기까지 했다. 당시 로시가 그 오퍼를 받아들였더라면 그는 지금 이탈리아의 ‘아주리(블루)’ 저지가 아니라 미국의 ‘화이트’ 유니폼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아주리군단’을 동경하며 자란 로시는 이미 이탈리아 청소년대표팀 멤버였고 이탈리아 대표팀으로 뛰고 싶다며 미국선수로 월드컵 무대에서 뛸 기회를 고사했다. 18세 소년이 월드컵 무대에서 뛸 찬스를 포기한 것이었다.
이미 만 12세 때 아예 부모형제가 있는 ‘고향’을 떠나 이탈리아 프로축구 파르마의 유소년팀에서 본격적으로 선수수업을 받기 시작한 로시는 17세 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U)와 계약한 뒤 이듬해 뉴캐슬로 임대됐다가 다시 친정팀인 파르마를 거쳐 지난 2007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비야레알로 완전 이적했다. 그리고 비야레알에서 그는 57게임에 나서 23골을 터뜨리며 ‘아주리군단’이 차세대 간판스트라이커로 꼽는 신성으로 떠올랐고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서도 4골을 터뜨려 득점왕에 올랐다. 이미 마르셀로 리피 이탈리아 감독은 그를 내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아주리군단의 공격을 이끌 넘버 1 스트라이커로 꼽고 있다. 뉴저지 출신인 미국대표팀의 밥 브래들리 감독은 “나는 그를 10살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정말 뛰어난 선수”라면서 “우린 로시가 미국 대표팀으로 뛰어주기를 희망했지만 결정은 그의 몫이다. 오늘 결과는 그에게는 매우 짜릿했겠지만 미국으로서는 매우 실망스럽다”며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김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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