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민 온지 얼마 안돼 맞벌이 부부로 일하며 자리를 잡느라 정신이 없던 윤 모씨는 어느날 변호사 사무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당신이 FBI 조사를 받고 있는 용의자의 한 명으로 오인되고 있으니 확인이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급히 그 변호사 사무실로 달려간 윤 씨는 큰 테이블에 펼쳐 놓은 자료들과 일일이 대조해 가며 자신은 그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임을 입증해야 했다. 하늘에 전혀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아왔기에 무서울 건 없었지만 엉뚱한 오해 때문에 하루 일과를 망쳤던 그날을 기억하면 “이게 미국 생활이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하다.
공항서 테러 용의자 오인 신원확인 진땀
난데 없이 ‘페이먼트 밀렸다’ 카드사 독촉
한인들 이름 끝자 ‘미들네임’간주해 혼란
이름이 남들과 비슷하거나 영문 표기가 오해를 살만한 내용이어서 곤욕을 치르는 한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단 석자로 이뤄진 한인들의 이름은 성을 빼고 끝 자를 미들네임으로 간주할 경우 비슷한 퍼스트 네임이 많기 때문에 혼란은 더욱 가중된다. 렌트, 유틸리티, 할부금 등이 체납됐을 때 렌더 또는 관계기관에서 연체자들의 소셜번호, 이름, 주소 등을 토대로 신용평가기관에 연체내역을 보고하는데 한인들의 이름은 비슷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아 다른 사람의 기록이 올라가는 피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인들은 또 같은 지역에 몰려 사는 경향이 있어 동명이인 혹은 비슷한 이름의 거주자가 많다 보니 이에 익숙치 않은 쉽게 오인된다.
망가진 크레딧을 고치는데 걸리는 기간도 짧게는 2개월. 우선 렌더에게 본인이 아님을 입증해야 하고 3대 신용 평가 기관에 잘못 기재된 기록들을 일일이 정정하려면 맘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컬렉션 회사나 융자기관, 정부기관에 수정을 요청하는 기록을 보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소비자 보호국에 항의하거나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고 조언하고 있지만 모든 수고는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이다.
다른 사람의 나쁜 크레딧 때문에 낭패를 당했다가 고치느라 몇 개월씩 고생하는 것도 속상한 일인데 범죄자로 찍혀 사법당국의 감시까지 받게 되면 정말 기분이 그렇다.
국내 여행을 하기 위해 얼마 전 공항을 들른 김 모씨가 바로 그 케이스. 경찰이 쫓고 있는 용의자와 철자가 같다는 이유로 장시간 신원 확인 작업을 받아야 했다. 다행이 오해가 풀려 비행기를 탈 수 있었지만 돌아오는 길에 또 한 번 고초를 겪어야 했던 그는 처음 공항에서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난리를 피울 수밖에 없는 미국 사법 체계의 후진성이 한심할 따름이다.
크레딧 문제나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훼어팩스에 거주하는 방 모 씨는 인터넷 모임 ‘페이스북(Facebook)’에 등록할 수 없는 고아(?) 신세여서 안쓰럽다. 이름을 영문으로 옮기면 미국 사람이 볼 때 조크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운영자가 등록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그의 설명. 그는 “실명을 요구하니 가명을 넣을 수도 없어 등록할 방법이 없다”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이병한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