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미국에 와서 살던 곳은 뉴햄프셔 주의 콩코드라는 작은 도시였다. 주도였는데도 얼마나 호젓하고 시골스러운지 그 흔한 스타벅스 커피점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가족이 제일 먼저 눈도장을 찍은 곳은 콩코드 공립도서관이었는데, 1855년에 세워져 당시 150년이나 된 곳이었다.
운전면허증을 얻기도 전에 맨 먼저 갖게 된 내 이름자 새겨진 도서관 카드를 받아들고 난 무척 황홀했다. 오래된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 어린이책 방으로 가는 길에는 환상적인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 속에서 엄지공주나 긴 머리채를 늘어뜨린 라푼첼을 찾아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그곳에서 난 첫 미국 생활에 필요한 흥미로운 정보를 얻었고, 유명한 박물관이나 역사 유적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회원권도 빌릴 수 있었다.
이후, 여행을 가게 되면 어디에서나 도서관을 기웃대는 취미가 생기게 되었는데, 캐나다의 오타와 도서관도 그런 곳 중의 하나다. 마침 다음날 묵을 숙소를 예약도 할 겸 인터넷을 이용하러 들른 그곳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단연 어린이책 코너였다.
놀라운 것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 동화책이 엄연히 공립 도서관의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것은 그냥 구색을 맞추기 위해 전시해 놓은 것이 아니었다. ‘아하, 시각장애 아이들도 이곳에서 비장애 아이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동화책을 읽으며 자랄 수 있겠구나’ 장애인과 함께 하는 점에서 그곳은 한 걸음 더 나아간 사회였다. 이렇듯 도서관은 저마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닮아있고 그들의 삶의 가치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뭐니뭐니 해도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제일 좋은 점은 동네 도서관에서 한국 책을 빌려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얼마 전 한인 사서가 기증 도서를 정리할 손길이 필요하다고 했다. 딸과 함께 도서관 봉사를 하기로 한 날, 우리 앞에는 한글,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페르시아 말로 쓰인 각양각색의 책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이것 봐. 중국어로 된 해리포터야!”
딸아이는 너무 신기해하며 책을 뒤적였다. 맛깔스러운 베트남 요리책에 군침이 돌기도 했다. 이윽고 우리가 책표지에 바코드를 붙이고 도서관 이름과 기증도서 스티커를 붙이자 책은 비로소 공공의 옷을 입게 되었다. 마치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 같았다.
누군가의 서고에서 하얗게 먼지를 쓰고 있었을 지 모를 책들이 이제 누군가의 손에서 손으로 바쁘게 움직여 다닐 것이다. 어쩌면 도서관간 대출 프로그램으로 멀리 뉴햄프셔주의 한글학교나 알래스카까지 날아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2009년 미국 서점협회가 뽑은 최고의 그림책은 ‘도서관에 간 박쥐’였다. 유난히 고요한 어느 날 밤, 박쥐들에게 기쁜 소식이 날아든다. 그들이 좋아하는 도서관의 한쪽 창문이 열려있다는 소식을 들은 박쥐들은 노르스름한 독서 등이 켜진 도서관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든다. 책도 읽고, 벽 앞에서 그림자놀이도 하고, 복사기에 몸을 복사하며 놀기도 한다. 그리곤 날개를 접고 재미있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가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캄캄한 도서관에서 박쥐들이 벌이는 책 축제, 박쥐들의 두근거리는 설렘과 날이 밝자 도서관을 떠나야 하는 그들의 아쉬움이 아름답게 그려진 책, 이 책을 쓴 작가는 멸종보호 동물인 박쥐에 대한 애정과 어린 시절 자주 갔던 리버사이드 도서관을 배경무대로 삼았다고 한다.
이미경 /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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