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대법원 판사 소토마요의 인사 청문회 직후 미국언론에는 이 청문회에서 여야의 팽팽한 공방 속에 진을 잔뜩 뺐지만 실제로 그녀에 대해 유용한 정보를 얻은 것도 없고 기분만 찜찜하다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었다. 평소 미국이건 한국이건 청문회라는 것에 별로 관심도 없이 그저 민주정치에서 거쳐 가는 통과의식 정도로 막연히 생각했던 나는 그 말들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에는 청문회를 좀 잘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두 주전 서울에 출장을 와 친구들과 저녁을 먹는 자리에 전 현직 국회의원 보좌관들이 합석하게 되어 자연히 코앞에 다가온 국무총리 인사 청문회 이야기가 화제로 오르자 마침 잘됐다싶어 “청문회 재미있나요?” 하고 운을 떼었더니 “재미는요. 다 뻔 한 걸요” 했다.
청문회에서 질문하는 국회의원들의 최대 관심사는 자신의 이미지 관리. 공중파 방송 TV 카메라가 청문회장 내에 있을 때는 더욱더 시청자들에 강열한 인상을 남기려 애쓰며 야당 의원들은 온갖 의혹을 제기하는 것으로 질의 시간을 채우면서 답변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했다. 의혹을 자꾸 제기하면 사람들은 뭔가 있나보다 생각하게 되고, 말할 기회를 안주면서 답변자를 압박하면 억울, 황당, 당황해하거나 헷갈리게 되고 자신의 페이스를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특히 검사들처럼 평생 남을 취조하는 위치에 있던 사람들은 이런 경우 왜 내가 이 꼴을 당하나, 자진 사퇴하고 말지 하는 생각이 울컥 든다했다. TV 카메라가 자리를 뜨면 그때부터는 질문이 아니라 의원들이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고장 난 테이프처럼 반복하는데 이는 인터넷으로 생중계 되는 청문회를 언제 자신의 지역구 사람들이 봐줄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번 청문회의 민주당 측 의원들은 모두 노무현 대통령 측근 386 출신들로 교육정책을 두고 노대통령과 정면으로 충돌했던 총리 내정자를 혼내주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기 때문에 아주 살벌한 청문회가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다수당인 여당이 주도, 인준을 할 것이지만 야당은 최대한의 상처를 입히는데 총력을 집중할 것이다, 병역, 세무, 위장전입, 논문 복제 등등의 단골메뉴 중에서도 특히 총리 내정자가 병역을 면제받은 부분을 병역 기피로 몰고 가면서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이다…’ 그들이 쏟아놓는 이러한 예언들을 들으며 나는 얼마나 그들 말이 맞는지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다.
청문회 첫날은 오전 열시에 시작, 밤 열시가 넘도록 내가 들었던 예언대로 공방이 진행되었지만 나는 오전에 두 시간 가량 지켜보다가 벌써 지쳐버렸었다.
이틀째는 다른 일들로 바빠 밤 열시가 되어서야 인터넷을 켜보니 여전히 고장 난 테이프가 돌아가고 있었다. 어떻게 끝이 나는지 호기심이 동해 한쪽으로 책을 읽으며 인터넷 중계를 그대로 켜놓고 밤 열두시가 넘자 졸음이 엄습했음에도 오기가 나서 버텼는데, 새벽 한시가 다되어 드디어 폐회를 선언하자 내게 떠오르는 생각은 단 한 가지, “저들은 휴식 시간에 도대체 무얼 먹었기에 저렇게 스태미너가 좋을까?”
알고 보니 민주당의 청문회 위원 4명중 3명이 병역을 면제받아 군대에 가지 않았고, 군대에 다녀온 나머지 한사람은 청문회 직후 수억대의 뇌물 수뢰 죄로 실형을 선고 받고 수감되어 의원직을 상실했다던가.
서울에서도 과연 청문회를 왜하는지 청문회를 청문회 해야 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나라에서건 청문회의 대상이 되어야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 내게는 갑자기 엄청난 행운으로 느껴졌다.
김유경 / Whole Wide World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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