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서 휴지 달라 법석
눈깜짝할사이 지갑 빼내가
지난 주, 덜레스 국제공항. 인천발 비행기에서 막 내린 W씨(여)는 화장실을 찾았다. 가방을 바닥에 내려두고 한참 ‘일’을 보고 있는데 옆 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휴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바닥의 공간을 통해 휴지를 건네주자 ‘옆 칸 여자’는 두 번이나 더 휴지를 부탁했다.
“별 여자 다 보겠네.” W씨는 대수롭지 않은 듯 볼일을 마치고 나왔다. 입국장을 둘러보았지만 자신을 마중 나오기로 한 친척은 보이지 않았다. 그날따라 도로가 막혀 친척은 한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밖은 화창한 가을날이었다. 그러나 느긋한 추일(秋日)의 낮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한국에서 로밍해온 휴대폰 전화가 울렸고 발신자는 난데없는 한국의 모 신용카드회사였다. “좀 전에 볼티모어의 한 마켓에서 신용카드를 썼느냐. 5차례 동안 1백40만 어치를 구입한 게 맞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W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방을 열자 지갑이 없었다. 누군가 지갑을 훔쳐 그의 크레딧 카드를 사용한 것이었다. 지갑 안에는 여권과 현금 등 미국에서 필요한 귀중품이 모두 들어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집히는 게 있었다. 화장실 옆 칸의 미국인 여자였다. “휴지를 자꾸 달라는 게 이상했어요. 제 정신을 어지럽게 해놓고 바닥의 가방에서 지갑을 빼간 것이 분명합니다.”
W씨는 즉시 신용카드 사용 정지 요청을 한 다음 공항경찰과 볼티모어 경찰에 연락했다. 그리고 공항과 범인이 다녀간 마켓의 CC TV 확인을 팩시밀리로 요청했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가방에서 지갑을 빼간 것도 그렇고 한 시간 밖에 안 되는 시간에 범인이 공항에서 볼티모어까지 가서 크레딧 카드를 사용한 것도 납득이 잘 안갑니다. 한마디로 미스터리입니다.”
W씨의 워싱턴 나들이는 어이없게 공항 화장실에서 망가졌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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