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추수감사절과 함께 연말 샤핑 시즌이 시작된다. 미국 소매 판매의 절반이 이 기간에 이뤄지고 소비가 미 GDP의 70%를 차지한다. TV에는 샤핑을 부추기는 광고가 넘치고 신문에는 선전 전단이 가득하다.
이들 상품 광고 중 아주 오랜 전부터 똑같이 반복되는 현상이 있다. 물건의 질은 좋아지면서 가격은 내려가는 것이다. 바로 가전제품 시장이다. 불과 수년 전 1,000달러가 넘어가던 컴퓨터는 이제 500달러 미만짜리가 흔하며 수천 달러를 호가하던 HDTV 가격도 이제는 1,000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가전제품 시장은 가장 경쟁이 심한 분야의 하나다. 전 세계 주요 메이커들이 전 세계 시장을 놓고 날마다 전쟁을 치르고 있다. 조금이라도 성능이 낫고 가격이 싼 제품은 더 높은 시장 점유율을 가지게 되고 대량 생산은 곧 ‘규모의 경제’로 이어져 단가를 내릴 수 있게 만들며 이는 다시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선순환을 가져온다. 반대의 경우는 물론 악순환을 거듭하다 그 분야를 아예 포기하거나 심지어는 회사가 문을 닫게 된다.
이와는 정반대로 해마다 올라가는 것이 있다. 미국 의료비와 보험료다. 직장인들을 가장 괴롭히고 직장이 없는 사람을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것의 하나가 이것이다. 직장이 없는 사람이 따로 보험을 들자면 이제는 4인 가족 한 달 보험료가 1,000달러에 육박한다. 보험 때문에 직장에 다닐 수밖에 없다는 얘기는 농담이 아니다.
어째서 의료비는 오르기만 하는 것일까. 전자제품 시장과 달리 의료 시장은 가장 경쟁이 없는 분야다. 메디케어나 메디칼 등 정부 보험은 말할 것도 없고 회사에서 들어주는 일반 보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자기가 받은 치료액이 얼마나 되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 어차피 자기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값싸고 좋은 의료 서비스를 찾아 샤핑을 다닌다는 것이 현 제도 하에서는 불가능하게 돼 있다. 어느 병원, 어느 의사가 양질의 서비스를 싸게 제공하는지는 알 길이 없고 어느 병원에서 사망자가 많이 나왔는가에 관한 기본적인 통계마저 공개돼 있지 않다.
병원과 의사는 그들대로 싸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소송당할 꼬투리를 잡히지 않을까 하는 것뿐이다. 이를 위해서 불필요한 테스트와 치료를 남발하고 있다. 비용은 어차피 환자가 무는 것도 아닌데다 이를 안했다 무슨 일이 생겨 수백만 달러짜리 소송에 걸리면 자칫 병원이 문을 닫게 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치솟기만 하는 의료비 상승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장 원리를 도입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늘리는 것이 급선무다. 지금도 극히 작은 규모로 실시되고 있는 건강 저축 구좌(HSA)를 확대해 세제 혜택을 주면서 개인이 건강 구좌에 저금해 간단한 진료는 자기 돈으로 해결하게 하는 것이다.
동시에 큰 병에 대비한 보험을 따로 들게 하고 의사와 병원에 대한 정보를 공개, 소비자들이 이를 고르게 해야 한다. 지금 의료 분야 중 유일하게 가격이 오르지 않는 곳은 성형외과 다. 환자들이 자기 돈을 내야하기 때문에 의사들은 가격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고 그 결과 함부로 값을 올려 받는 것이 불가능하게 돼 있다.
이와 함께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 부당의료 행위에 대한 손해 배상액수 제한이다. 현재와 같이 의사와 병원에 대한 소송 판결이 무슨 복권 당첨 행사처럼 터무니없는 액수로 예상 불가능하게 나올 경우 의사와 병원들의 몸 사리기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연방 하원이 역사적인 전 국민 의료 보험 안을 통과시킨데 이어 상원마저 필리버스터를 깰 수 있는 60표를 확보한 상태에서 법안 조절에 들어갔다. 지금 의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법안에는 망가진 미국 의료 시장을 고칠 수 있는 내용은 아무 것도 없다. 의료비 상승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다.
민경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