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천지창조 신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창세기에 나와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첫 인간은 아담과 이브다. 이들은 지상 낙원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한 단 한 가지 일을 저지른다. 그 다음에 한 일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발뺌을 한 것이다.
‘먹으면 죽는다’는 협박까지 해 가며 금지한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왜 하지 말라는 짓을 했느냐’는 추궁을 받자 “당신이 데려온 여자가 줘서 먹었다”고 책임을 이브와 하나님에게 은근히 전가한다. 이브는 이브대로 자기가 아담에게 줘 먹게 했다는 이야기는 쏙 빼고 “뱀이 나를 속여 먹게 됐다”고 역시 책임을 뱀에게 돌린다.
잘못을 하고도 책임을 지지 않고 이리저리 둘러대는 것은 아담과 이브의 자식 카인 때 와서는 마찬가지 정도가 아니라 더 심해진다. 아벨을 죽이고도 하나님이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내가 동생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오히려 반문한다. 이 이야기를 듣는 부모들은 자식들이 말썽을 피울 때마다 “하나님이 지은 자식들도 저 모양인데 내 자식들이야 어련할까” 하고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창세기 작가가 이 이야기를 성경 제일 앞에 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잘못을 저지르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는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진화론적으로 따져 보면 쉽게 설명이 된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마다 꼬박꼬박 책임을 지는 개체는 집단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고 결국 도태된다. 도태된 개체는 종족을 남기지 못한다. 결국 지금까지 살아남는 종자는 대체로 기회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성향이 강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처신은 개개인에게는 좋을지 몰라도 집단 전체로 보면 큰 문제다. 서로 잘못을 저질러 놓고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집단은 질서가 무너질 수밖에 없고 질서가 무너진 집단은 존립이 불가능하다. 진화론적으로 이를 막기 위해 나온 장치가 남의 잘못에 대한 감시다. 인간은 자기 잘못에는 둔감하지만 남의 잘못에는 민감하다.
어느 직장, 어느 조직을 막론하고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떠벌이고 남의 잘못을 덮어주는 사람보다는 그 반대의 경우가 훨씬 많다. 이 현상은 인간 사회가 존재하는 한 아마 바뀌지 않을 것이다. 자기 불이익을 감수하고 원칙을 지키는 사람,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스스로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행위는 그래서 아름답다.
한국 정치사에서 이런 행동으로 덕을 가장 많이 본 사람은 아마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을 것이다. 가만히 있으며 자리가 보장되는데도 3당 합당을 비난하며 당을 뛰쳐나왔고 당선이 확실한 지역구를 놔두고 서울에서 출마해 떨어지는 우직한 모습을 보였다. 이 때 많은 사람들에게 준 강한 인상이 훗날 대통령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비슷한 길을 가려하고 있다. 세종시를 행정 도시로 만드는 일은 이미 다 법으로 제정돼 있다. 국가 예산이 자기 돈도 아니고 임기 동안 완성될 일도 아니니까 뒷일이야 어떻게 되던 나는 인심이나 쓰다 가자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 사람이다. 차기 대선을 생각해서라도 사실상 캐스팅 보트를 튀고 있는 충청권 표를 버리면서까지 이런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거기다 표를 의식해 잘못된 공약을 내걸었다고 사과까지 했다.
한 나라의 수도를 둘로 쪼개 행정부처를 나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고 예산 낭비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나 충청권 표를 노린 ‘바보 노무현’이 행정도시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자 여야 모두 이 표가 아까워 어영부영 하는 사이에 이것이 국가 정책으로 결정된 것이다.
이번 세종시 논란을 보며 분명해진 것이 하나 있다. 한국은 대통령 중임제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렇데 되면 첫 번째 임기는 다음 대선을 의식해 국가 형편이야 어떻든 선심성 사업과 공약으로 다 보내게 될 게 뻔하다.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내린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과 용기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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