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전적, 정신적 부담을 안겨주는 불청객은 행사장의 큰 골칫거리이다. 불청객은 대개 눈치와 염치가 없고 이기적이다. 그러나 뚜렷한 목적과 사랑을 품고 가면 불청객도 환영받을 수가 있다. 불청객이라고 다 같은 불청객이 아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대표적 불청객은 예수님을 위해 값비싼 향유가 든 옥합을 깬 여인이 아닌가 한다. 창녀였던 그녀는 예수님을 식사에 초청한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냉대를 각오하고 찾아가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머리털로 씻어 입 맞춘 뒤 향유로 씻겨드렸다. 예수님은 불청객인 그녀를 칭찬하고 죄를 용서해 주었다.
구세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도 불청객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해산을 앞둔 성모 마리아는 베들레헴에서 문전박대 끝에 겨우 마구간을 얻어 아기 예수를 낳았고 헤롯왕은 예수를 제거키 위해 혈안이 됐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도 예수를 눈 안의 가시처럼 여겼다.
불청객으로 오신 예수님의 사전에는 ‘불청객’이 없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며 인류를 모두 구원의 잔치에 초청했다. 온 세계가 제 멋대로 축하하는 크리스마스가 진정 지구촌 구원의 축제가 되는 날은 언제쯤일까.
나도 불청객 역할을 해본 경험이 있다. 60년대 후반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해서 대학을 다닐 때였다. 어느 날 군대 친구 L이 학교로 찾아와 느닷없이 저녁에 진수성찬을 대접하겠다고 나섰다. 쥐꼬리만 한 봉급으로 겨우 먹고 사는 처지에 나를 극진히 대접하겠다는 L의 저의가 의심스러웠다. 내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그가 이실직고 했다.
“제대 직후 명동에서 만났던 K 기억나?”
그와 인사를 나눴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K는 명동의 한 음식점 조리사였다. 둘은 6.25 때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몇 년간 한 솥밥을 먹고 자란 친구 사이였다.
“오늘이 K의 약혼식이야. 신랑 측 하객이라고는 식당 매니저와 나뿐인데 같이 가자”
“K하고 악수 딱 한번 해본 사이인데 초청도 안 받고 어떻게 가냐?”
내가 불참 의사를 밝히자 L이 나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진수성찬에 팔려가는 것 같아 찜찜했지만 마침내 나는 불청객이 되기로 동의했다. 나는 L에게 당부했다. “내가 친구로 참석한다는 사실, K에게 따끔하게 귀띔해 줘. 나에게 반말 잊지 말라고”
약혼식장은 흑석동 약혼녀의 집이었다. 20 명의 하객들이 자리를 잡고 약혼식 준비가 완료되었다. 약혼녀의 삼촌이 나 와 L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관행에 따라 신랑친구 중 한 분이 약혼식 사회를 맡아주셨으면 하는데…”
말주변이 없는 L이 즉각 나를 추천했고 하객들이 약속이나 한 듯 재청을 했다.
불청객은 졸지에 약혼식 사회의 중책을 떠맡게 되었다.
약혼식은 무사히 끝났고 식당매니저는 곧 자리를 떴다. 약혼식 사회를 마친 불청객은 어깨를 활짝 펴고 당당해졌다. 나는 신부 측과 어울려 먹고 마시며 신랑 친구 배역을 잘 소화해 냈고 K도 서툰 연기로 나를 친한 친구처럼 대해 주었다.
연극은 무대를 떠나는 장면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우리가 하객들의 환송 속에 막 작별을 고하려는 찰나, K가 앞으로 나서며 나의 오른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아뿔싸! 잘 나가다가 막판에 존댓말이 튀어나오다니.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불청객인 나의 정체가 탄로 난 것 같아 가슴이 철렁했던 순간이었다. 누가 감히 나를 불청객이라고 부르겠는가.
온 세상이 축제로 들뜨는 계절, 축제에 초대받지 못한 소외된 이웃을 불쑥 찾아가 사랑을 나누어 주는 불청객이 되어보자.
황시엽 / W.A. 고무 실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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