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꿈을 꾸는 동물이다. 대부분 인간은 자신과 자기 가족이 좀 더 나은 삶을 사는 꿈을 꾸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소수지만 사회 전체가 잘 사는 꿈을 꾸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불의와 압제에 신음하는 민중을 구하기 위해 썩은 세상을 뒤엎고 자유, 평등, 평화, 행복이 넘치는 지상낙원을 건설하고 싶어 한다.
그런 세상을 마다할 사람은 별로 없다. 그것이 높은 이상을 건 혁명이 터질 때마다 초기에는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이유다. ‘대혁명’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근대 혁명의 아버지 격인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을 때 영국의 시인 워즈워드는 “그 날 살아 있다는 것은 축복이었고 젊다는 것은 천국 그 자체였다”고 노래했다. 이처럼 혁명을 축복하던 그도 나중에 혁명이 과격해지며 수 천 명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프랑스뿐만이 아니다. 거의 모든 혁명이 그렇다. 프랑스보다 100년 이상 먼저 국왕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 찰스 1세의 목을 도끼로 자른 영국은 올리버 크롬웰의 철권통치 하에 이상 사회를 건설하려 해 봤으나 실패로 끝나고 크롬웰이 죽은 후에는 찰스 1세의 아들을 다시 왕으로 모셔왔다.
프랑스 혁명 후 세워진 것은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 포병 장교 출신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집권한 뒤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 세운 제국이었다. 이 제국은 10여 년 간 전 유럽을 군화발로 짓밟은 뒤 나폴레옹 몰락과 함께 무너진다.
프랑스 혁명을 본 딴 러시아 혁명도 마찬가지다.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이상사회 건설을 기치로 내건 러시아 혁명이 터지자 전 세계 진보주의적 지식인들은 환호했으나 그 결과 나타난 것은 노동자들의 낙원이 아니라 스탈린의 철권 통치였다. 그의 손에 의해 공산 낙원을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동지들은 모두 처형됐다.
한국도 4.19 혁명 뒤 5.16 쿠데타로 군부 독재가 장기간 지속됐다. 일부에서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일찍 꽃피지 못한 책임을 박정희에게 돌리겠지만 위 여러 나라의 예를 보면 일반적으로 혁명 뒤 오는 것은 지상 낙원이 아니라 강력한 독재자의 등장임을 알 수 있다.
왜 일까. 그 이유는 인간이 천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압제자와 피압박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기존 체제가 무너진 후 무질서와 혼란이 계속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잡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며 그 승자는 가장 무자비하고 가혹한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독재는 필연이다.
이집트에서 장기간 계속된 시위로 사실상 호스니 무바라크의 30년 독재 체제는 끝났다. 일부에서는 즉각 그가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상태에서 권력의 진공 상태가 발생하면 이를 채울 가능성이 가장 많은 집단은 국민 30%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극렬 회교 집단 ‘회교도 형제단’이다.
이들이 집권할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질 것인지를 보여주는 나라가 있다. 인구 7,600만의 이란이다. 1979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팔레비 국왕의 실정을 비난하며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그 결과 호메이니를 주축으로 하는 회교 성직자 집단이 권력을 장악했고 ‘회교 공화국’ 선포됐으며 그 후 30년 째 회교 독재가 계속되고 있다. ‘한 사람, 한 표, 한 번만’의 전형적인 예다.
반면 군부가 계속 회교 세력을 견제하며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이뤄가고 있는 나라도 있다. 터키다. 인구 7,300만으로 7,900만의 이집트보다 적으면서도 GDP는 그 4배가 넘는다. 국민들의 교육 수준도 중동에서 가장 높고 유럽 연합 가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즉각 부패한 독재자를 몰아내고 민중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세우겠다는 꿈은 낭만적이며 감동적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이집트, 이란, 터키는 중동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들이다. 이집트가 이란의 길을 가느냐 터키의 길을 가느냐가 앞으로 중동의 앞날을 좌우할 것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