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열린 공화당 네바다 코커스는 예상대로 롬니의 압승으로 끝났다. 모르몬교의 본산 유타 바로 옆에 있는 네바다는 모르몬교도가 많은 곳으로 일찌감치 롬니의 승리가 예견됐지만 롬니 49%대 깅리치 22%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치다.
이로써 지금까지 롬니가 얻은 공화당 대의원 수는 85명으로 20여명에 불과한 깅리치는 물론이고 론 폴과 릭 샌토럼 등 나머지 후보 대의원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공화당 대선 후보는 이미 결정됐다 봐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네바다는 과거 11번 대선 가운데 10번이나 승자를 선택한 기록을 갖고 있다. 롬니는 네바다 선거 결과가 나온 후 가진 연설에서 다른 공화당 후보는 거의 언급하지 않은 채 오바마 공격에 초점을 맞추었다.
일부에서는 깅리치가 곧 사퇴할 것이란 소문도 흘러나오고 있으나 깅리치 본인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어느 쪽이 맞는 말일까. 아무래도 깅리치 쪽이 맞을 것 같다. 그는 자신이야말로 세상을 바꿔놓을 ‘세계 역사적 인물’이란 확신에 사로잡혀 있다.
이 확신 덕에 만년 소수당으로 전락해 있던 공화당은 94년 ‘미국과의 계약’을 들고 나와 하원 다수당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 여름 캠프 내 내분으로 ‘깅리치는 끝났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도 이를 극복하고 여론 조사 결과 선두주자로 올라섰으며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의 패배로 또 ‘깅리치는 끝났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다시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이기며 기염을 토했다. 7일로 예정된 미네소타와 콜로라도 코커스와 미주리 예선에서 지더라도 자신의 지역구가 있던 조지아를 비롯 남부 주들의 예선이 열리는 3월 수퍼 화요일까지 가보겠다는 것이 깅리치의 결심이다.
가본들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는 미국 유권자들로부터 비호감 1위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50%가 넘는 반면 좋아하는 사람은 25%에 불과하다. 그와 함께 의회에서 일했던 사람치고 그를 칭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독단적이고 과대망상적이며 성질이 개 같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거기다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파라는 인물이 두 번이나 이혼하고 불륜을 저지른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데다 이번 주택 버블의 원인 제공자의 하나인 패니 매로부터 1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받고도 자신은 ‘역사가’로서 자문했을 뿐 로비와는 무관하다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이런 인물이 대선 후보로 나설 경우 백악관은 그만 두고 겨우 다수당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하원마저 내주게 될 게 분명하다는 것이 공화당 지도부의 일치된 판단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깅리치가 이기자 그의 연방 상원 파트너였던 밥 돌 전 공화당 원내총무는 ‘깅리치만은 막아야 한다’는 서한을 공개했다. 플로리다와 네바다에서의 롬니 압승은 이같은 판단이 지도부뿐만 아니라 공화당 전체에 널리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반증이다.
반면 롬니는 작은 정부와 세제 개혁, 사회 복지 비용 등 예산 삭감과 오바마 케어 철폐 등 티파티 지지자 입맛에 맞는 얘기만 골라 하며 지지층을 넓혀가고 있다. 이렇게 해서 일단 당내 지명을 받은 후 본선에서는 총기 규제 및 낙태 허용 등 온건파 이미지를 부각시키면 중도파를 끌어들여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인 모양이다.
그러나 깅리치가 당내 예선에 끝까지 남아 ‘세금을 15%밖에 내지 않은 부자 롬니’를 공격한다면 본선에서 그의 입지는 크게 위축될 것이다. 오바마로서는 “같은 공화당내에서도 ‘세금 덜 낸 부자’라고 공격받던 인물을 백악관에 보낼 수는 없다” 한 마디만 하면 된다. 오바마가 할 일을 깅리치가 충실히 대신해주고 있는 셈이다. 미국민 대다수가 장기 불황으로 고통 받는 지금 ‘특권층 1%’로 찍힌다면 헤어나기 힘들다. 백악관에서 혼자 몰래 웃고 있는 오바마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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