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댄 브라운이 쓴 ‘다 빈치 코드’는 공전의 베스트셀러다.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종교 집단의 음모를 파헤친 스릴러인 이 책은 지금까지 44개 언어로 번역돼 8,000만 부가 팔렸으며 책보다 훨씬 떨어지기는 하지만 탐 행크스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지기도 했다.
여기 나오는 비밀 종교 단체 ‘오퍼스 데이’(Opus Dei, ‘신의 작품’이라는 뜻)는 실제로 존재하는 집단으로 책에서처럼 사람을 마구 죽이지는 않지만 가톨릭 내 극우파 조직인 것만은 틀림없다. 2002년 로마에서 이 단체 창립자이자 성인인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는데 여기 연사로 특별 초청돼 강연한 인물이 있다. 공화당 대선 주자 릭 샌토럼이 그 사람이다.
샌토럼은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몰타 기사단의 단원이기도 하다. 1050년 성지 순례를 떠나는 빈자와 병자를 돌보기 위한 봉사 단체로 출범한 이 단체는 1099년 십자군이 예루살렘 점령에 성공하자 무력 집단으로 변신, 회교도들과 싸우는데 앞장선다. 성지가 회교도 손에 떨어지자 14세기부터는 200년 동안 로즈 섬으로 본부를 옮겼으며 이곳 또한 회교도가 쳐들어오자 몰타 섬으로 가 18세기말 나폴레옹에 의해 축출될 때까지 존재했다. 지금은 빈자와 병자를 돕는 원래 목적으로 돌아가 봉사활동을 펴고 있지만 이 또한 골수 가톨릭 조직임에는 틀림없다.
90년 결혼한 샌토럼은 독실한 가톨릭답게 낙태는 물론이고 피임약 사용도 반대한다. 그는 자신의 믿음을 실천에 옮겨 20여 년 간 8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 중 한 명은 조산으로 낳은 지 2시간 만에 죽었고 2008년 아내 카렌이 48살 때 낳은 8번째 아이는 유전병인 에드워즈 신드롬 증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 병 환자는 90%가 1년 내 사망한다.
미국 정치인 중 사회적인 문제에 가장 보수적인 릭 샌토럼이 요즘 공화당 대선 후보로 급속히 뜨고 있다. 올 초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재검표 결과 롬니에 신승했을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지만 2월 초 콜로라도, 미네소타 코커스와 미주리 예선을 휩쓸면서 얘기가 달라져도 많이 달라졌다.
다음 주 있을 미시건 예선에서 40%대 32%로 롬니를 앞서고 있으며 전국적 지지도에서도 롬니를 추월하고 있다. 아직도 조직과 자금 면에서는 훨씬 열세지만 아버지가 주지사를 지내고 자신이 어린 시절을 지낸 미시건에서조차 샌토럼에 진다면 롬니는 끝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사실 샌토럼은 경력이나 업적 면에서는 미국 인구 증가에 기여했다는 것을 빼고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 그가 뜨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그가 롬니도 깅리치도 아니라는 것뿐이다.
공화당의 주요 기반인 티 파티 지지자들이 볼 때 모르몬에다 사회적 중도파인 롬니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기다 ‘특권층 1% 수퍼리치’로 몰리면서 그가 공화당 대선 주자가 될 경우 본선에서 오바마와 승산이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대타였던 깅리치는 불륜을 저지르며 결혼을 3번씩 한데다 워싱턴 로비스트로 돈을 받으면서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등 약점이 너무 많고 무엇보다 미국민들로부터 비호감 정치인 1위로 꼽혀 도저히 당의 대선 후보로 내놓을 수 없다는 당 지도부의 결론이 내려진 상태다. 이것저것 다 빼다 보니 샌토럼밖에는 남은 인물이 없는 것이다.
그가 공화당 대선 주자가 될 경우 본선 결과는 어떻게 될까. 오바마의 압승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공화당 보수파는 샌토럼을 찍겠지만 본선을 좌우할 중도의 몰표가 오바마한테 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울 것 같던 미국 대선이 싱거워지고 있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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