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이름 중 가장 흔한 이름이 ‘모’이냐? 평소 가깝게 지내는 미국 언론사 기자의 질문이다. 한국 언론 기사를 보면 늘 ‘모’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보도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한국 언론에 등장하는 ‘모’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다. 언론이 기사를 보도하면서 뉴스가 된 사람의 신분을 ‘모’로 익명 처리하는 그 자체를 비꼬아 지적한 것이다.
이에 개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특정인이 뉴스 보도 대상이 된 이상 그 한 개인의 이익 보다는 공공 이익이 앞선다는 논리 때문이다. 특히 뉴스 대상자가 범죄와 같이 공익을 해치는 행위와 관련된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한국 언론은 이러한 기사를 보도하며 김모씨, 박모씨, 이모씨, 최모씨 등으로 일괄 처리한다. 그도 모자라 K씨, P씨, L씨, C씨로 대처하기까지 한다.
지난 달 21일 미국 법무부 뉴멕시코 지방 검찰이 한 장의 보도자료를 냈다. “한국인 대학생들 ‘엘 모로’ 국가지정유적 훼손에 유죄 시인”이라는 제목에 “피고들 유적 훼손 복원비용 배상금 2만9,782달러62센트 지불”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었다.
보도 자료는 이들 학생의 이름과 나이는 물론 출신 국가와 체류 신분까지 낱낱이 공개했으며 심지어는 언론 요청에 법무부 워싱턴 D.C. 본부가 기소청구장 사본도 풀었다. 물론 언론은 검찰 보도 자료와 기소청구장을 근거로 기사를 보도했고 법원에 출두하는 이들 2명 한국인 유학생들의 사진도 촬영해 함께 뉴스로 다뤘다. 뉴멕시코주 국립공원에 놀러갔다 사적지에 낙서를 해 체포되고 여권을 빼앗기고 법정에 끌려가 유죄를 시인하고 거액의 복구비를 징수 당한 것도 모자라 그러한 사실이 지역 신문과 방송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이다.
무슨 강력 사건도 아니고 거액을 횡령한 것도 아니다. 기껏 해야 최고 6개월 실형과 5,000 달러 벌금형이 가능한 B급 경범죄다. 더욱이 검찰과 사전 협상을 벌여 복구비를 지불키로 하고 유죄를 시인하는 조건으로 실형과 벌금형 없이 사건이 종결됐는데도 검찰이 보도 자료를 내고 언론이 사건을 대서특필한 것이다. 한국 검찰과 언론 차원에서는 김모씨, 박모씨로 또는 아예 기사로 취급하지도 않을 정도로 사소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 검찰과 언론은 이들 학생의 개인 이익 보다는 공공 이익을 앞세웠다. 검찰은 이들 학생의 행위가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를 가한 범죄로 공익을 해친 행위이기에 그에 대한 대가와 책임 중 하나로 신상을 공개한 것이며 언론은 사건을 널리 알려 사회 계몽으로 재발 방지에 나선 것이다. 왜 ‘모’씨가 가장 흔한 한국인 이름이 되어야만하나 신중하게 짚어봐야 할 이유다.
산용일
뉴욕 기획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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