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LA에서 발생한 흑인 폭동은 미주 한인사회와 한인들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분기점이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오는 29일 LA 폭동 20주년을 앞두고 13일 한미과학협력센터에서 열린 PNP 포럼(회장 윤흥노)의 강사로 초청된 장태한 교수(UC 리버사이드대)는 “4.29는 한인들을 ‘코리안’이 아니라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탄생시키는 계기가 된 날”이라며 “역설적으로 미 주류사회도 이때부터 한인들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4.29는 미주한인 이민100년사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힘들었던 사건”이었다고 회상하면서 “당시 한인들은 전체 경제적 손실의 40%를 차지하는 피해를 입었으면서도 정치인들로부터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는 등 두 번 당하는 신세였지만 미국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자각을 하게 된 것은 이민사에서 큰 전환점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장 교수는 “우리는 단일 민족이라는 생각 아래 타민족과의 교류, 협력을 도외시하고 특히 흑인 커뮤니티와 마찰을 빚어왔던 한인들이 사회 참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 것은 이 폭동이 계기였다”면서 1세와 2세간의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대화의 기회가 마련된 것도 긍정적인 변화 가운데 하나로 열거했다.
그러나 그 때의 아픔을 딛고 일어난 미주한인사회가 아직도 눈에 띄는 주요 선출직 정치인을 배출하지 못한 것은 숙제라고 그는 봤다.
이와 함께 장 교수는 LA 폭동은 미주 한인사회가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되는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대인들의 영향을 받은 미국 영화산업계가 해마다 홀로코스트 관련 영화를 제작해 나치의 잔학상을 고발하듯 LA 폭동의 엉뚱한 피해자였던 한인들의 쓰라린 과거를 계속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 중 하나가 2차대전과 한국전에 참전했던 김영옥 대령”이라고 소개했다.
미 언론 ‘MSN.com’이 미 전쟁영웅 16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할 정도로 미국사회에도 잘 알려진 김영옥 대령은 1919년 LA에서 태어났으며 2차대전에 참전하고 예편한 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입대했고 미국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계 전투대대장이 되는 기록을 남겼다.
장 교수는 “김영옥 대령은 2세들이 꼭 알아야할 영웅이고 그 분을 통해 미주한인사회는 모국과 미국의 유대를 증진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념 대립을 넘어 한인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고 덧붙여 말했다
장 교수는 2010년 UC 리버사이드대 내에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를 설립하고 현재 소장을 맡고 있으며 한인 이민사 자료 정리 및 김영옥 대령 같은 롤 모델이 되는 인물을 알리기 위한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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