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큰 기부 소식이 들려왔다. 모 단체가 저소득층 자녀들이 학습하는 방과후 학교에 고가의 실습 기자재를 전달한다고 했다. 기자회견을 겸한 공식 전달 행사 일정이 보도자료 형식으로 각 언론사에 배포됐다.
하지만 행사 당일 약속된 장소인 그 방과후 학교를 찾았지만 분위기는 썰렁했다. 행사로 북적여야 할 인파가 없었고, 타사 기자 한 명 나타나지 않았다. 수업이 진행 중인 한 교실을 찾아가 학교 담당자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리곤 이런 말을 들어야 했다.
“기부를 하기로 한 OO재단에서 취재 기자들이 많이 안 올 것 같다며 일정을 취소했어요.”언론사의 참석률 저조가 이날 행사 취소의 이유라는 설명이었다. 실습 기자재가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모습이 신문과 텔레비전, 라디오 등 매체에 소개가 안 된다면 차라리 행사 자체를 취소하는 게 낫겠다는 계산이었다.
취재 허탕을 쳤다는 상실감이나 좌절감은 없었다. 다만 이 ‘통 큰 기부’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느냐는 질문이 그 후로 며칠간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강원도 삼척의 한 시장에서 속옷 장사를 하는 전정자(72) 할머니는 이웃 상인들에게 자상하고 마음이 따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기자들에게 만큼은 ‘욕쟁이’로 통한다. 그 이유가 흥미롭다.
이 할머니는 대형 폭설로 크게 파손된 시장 곳곳을 수리하라며 1억 원이 넘는 돈을 기부하고, 폭발사고로 일터를 잃은 사람들에게 큰돈을 쾌척한 ‘기부천사.’ 그런데 기자들이 찾아오기만 하면 욕을 하고, 찬물을 끼얹으며 내쫓기에 급급하다. 심지어 김황식 국무총리가 직접 문을 두드리며 방문했을 때도 할머니는 과격하게 냉대했다.
피해 상인들이 불쌍해서 가진 것 조금 나눴을 뿐인데 과연 이게 세상에 알려지는 게 옳으냐는 게 할머니의 주장이었다. 그래서 이 사연을 소개한 모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은 전정자 할머니의 욕설을 ‘따뜻하다’고 표현했다.
연말연시를 맞아 어려운 이웃을 돕는 운동과 행사, 모임 등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더욱이 올해 뉴욕일원에는 허리케인 샌디 피해까지 겹치면서 그 분위기가 한층 더 달아올라있다.
이런 ‘기부’와 ‘선행’에 동참하기 전 우리가 한 번쯤은 점검해 봐야 할 게 있다. 바로 이 같은 행동에 ‘진심’이 담겼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진심’이 빠진 도움은 결국 나 자신을 위한 행동이다.
실습 기자재 전달 행사의 취소를 결정한 그 단체의 진짜 속마음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날 갑작스런 취소를 접한 어린학생들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그 기부에 ‘진심’이 담겼는지 여부는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기부’와 ‘선행’은 분명 아름답다. 박수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박수소리에 너무 도취되면 내 ‘불우이웃 돕기’는 결국 ‘내 자신 돕기’일 뿐임을 기억해야 한다. 불우이웃과 저소득층 학생들, 허리케인 피해자들은 내가 박수를 받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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