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어처럼 동시대 사람들의 속마음을 오롯이 반영하는 게 있을까? ‘된장녀’란 말에선 소비풍조를 비꼬는 문화가,‘너’와 ‘나’가 아니라 ‘갑’과 ‘을’로 규정하는 말 속엔 기득권을 가진 사람과 아닌 사람의 벽이 공고해지는 서글픈 세상사가 반영되어 있다. ‘민폐’란 말도 근 몇 년 사이에 많이 쓰이는 말 중 하나가 됐다. 주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뜻하는 민폐란 말의 어원은 원래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불가피하게 민간인에게 가하는 피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접하는 ‘민폐’란 말은 지하철에서 둘 셋은 앉을 수 있는 자리에 누워있는 것같이 자기만 편하자고 공공질서에 불편함을 끼치는 일부터 집단 안에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모든 사람에게 두루두루 쓰이고 있다. 전자가 고쳐야 하는 민폐라면 후자는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초보운전자가 차선을 바꾸느라 주위의 운전자들에게 불편함을 끼칠 수 있다.
이럴 땐 ‘민폐’라는 말로 초보운전자를 탓할 게 아니라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양보하고 기다리는 쪽이 좋다고 본다. 누군가 우리와 다르거나 우리와 같이 보조를 맞출 수 없을 때 ‘민폐’란 말을 쓸 때는, 초점이 ‘나’와 “내 집단’의 입장에만 맞춰져 있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불편하고 나에게 손해가 되는 일을 민폐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조상은 ‘민폐’란 말 대신 ‘염치’라는 말을 썼다. 염치란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염치란 말 속에는 상대방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내’가 조심하는 마음에 방점이 찍혀 있다. 염치를 차리고 살 때는 남의 잘못보다는 나에 대한 반성이 앞서 있었는데 ‘민폐’란 말이 유행하는 세상에는 나의 반성보다는 남탓하는 일이 더 우선해 보인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확실해지는 것은 삶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더불어 같이 가는 거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불어 같이 가기 위해서는 민폐라고 남탓을 하기보단 염치를 차리려고 노력이 더 소중한 마음일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