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기문화의 시초 ‘백자 해무리굽 완’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백자 해무리굽 완>처럼 굽바닥의 폭이 넓어 마치 해무리가 진 것 같은 모양을 한 사발들이 있다. 이 도자기들은 주로 차를 마시는데 사용되었던 다완(茶碗)이었다. 발굴조사 결과 경기도 용인, 시흥, 여주 등 한반도 중서부 지역 가마터 유적에서 유사한 유형의 유물들이 집중적으로 출토되었는데, 가마는 공통적으로 벽돌을 주재료로 쌓아 축조했으며 평균 길이 40미터 정도의 대형인 것으로 밝혀졌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에서 제작된 이같은 ‘해무리굽 완’과 유사한 유물들이 중국에서도 다수 발견될 뿐 아니라, 제작에 관여했던 대형 벽돌가마와 흡사한 구조 및 축조법을 가진 가마 역시 중국에서 발견된다는 점이다. 이들은 모두 중국 절강성(浙江省)에 위치한 월주요(越州窯) 청자 가마와 관련이 있었다.
이처럼 한반도 중서부 지역과 중국 남동부 지역, 황해를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진 두 장소에서 유사한 유물과 제작설비가 발견된다는 것은 이들이 특별한 인연을 공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것은 두 지역 사이의 교류, 특히 구체적인 산업 생산과 관련한 기술 교류의 가능성이다.
도자기의 역사에서 자기(磁器)의 제작은 곧 도자기 생산의 혁신적인 변화를 의미했다. 거칠고 어두운 도기(陶器)에서 매끄럽고 아름다운 자기(磁器)로의 전환은 이전과 다른 재료의 탐구와 이에 걸맞는 새로운 설비, 즉 가마를 비롯한 제작도구의 전면적인 변화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릇을 매끄럽게 마무리하는 유리질 피막, 즉 유약에 대한 지식이 함께 요구되었음은 물론이다.
인류의 삶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듣는 자기(磁器)의 제작은 인류의 역사에서 수 백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 변화의 결과였다. 그리고 끊임없는 실험과 노력이 필요했던 자기의 제작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이들은 중국의 도공들이었다. 기원후 1세기경 부터 초보적인 단계의 자기를 제작했던 중국은 8세기 후반 경 양질의 청자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면서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자기 제작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한반도에서의 청자 제작은 자체적으로 축적된 도자기 제작 기반 위에 중국의 선진 기술이 접목되면서 시작되었다. 통일신라시대, 늦어도 9세기까지 한국의 도자기 제작 기술은 청자의 바로 전 단계라 설명할 수 있는 고화도(高火度) 회유(灰釉) 단계에 도달해 있었다. 이미 섭씨1,000도 이상의 불을 다루는 능력과 유약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음다(飮茶) 문화에 관심이 있었던 한반도의 실력자들이 자기(磁器) 다완(茶碗)에 관심을 보이며 당시의 최첨단 하이테크였던 자기 제작기술 도입에 적극적으로 관여했고, 이와 같은 배경에서 절강성 월주요 기술자들을 통해 중국이 수백년에 걸쳐 완성했던 핵심기술이 국내에 전래되었다.
이로써 한국은9-10세기 사이에 ‘해무리굽 완’과 같은 자기 생산을 시작하며 인류 역사상 2번째로 자기 문화를 누리는 국가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려청자, 조선백자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자기 문화는 이처럼 외부의 선진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배우는 열린 자세에서 시작되었다. 주변국과의 교류를 바탕으로 시작된 한국의 자기는 곧 중국의 영향을 벗어나 한국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냈고, 결국 종주국이었던 중국으로부터 ‘천하제일(天下第一)’이라는 칭호까지 받으며 화려한 꽃을 피워냈다. 미술관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작은 <백자 해무리굽 완> 한 점은 일천년 자기 문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 이 유물은 호놀룰루미술관 특별전 <화려함과 단아함,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한국 도자 명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호놀룰루미술관 관람 정보>
808-532-8700
www.honolulumuseum.org
관람료
일반 10달러
만 17세 미만 무료 입장
관람시간
화요일-토요일 10:00-16:00
일요일 13:00-17:00
* 매주 월요일 휴관
* 매주 화요일 10:00~12:00은 한국어 도슨트 투어 가능
* 무료 관람일 및 휴일 관람시간은 홈페이지 참고
<이미지 정보>
1. Bowl Korea, Goryeo dynasty, 10th century Stoneware with glaze Gift of Anna Rice Cooke, 1927 (72)
백자 완고려시대 10세기 1927년 앤 라이스 쿡 기증 (72)
<하와이 한인미술협회 후원>
오 가 영
호놀룰루미술관 아시아부 한국미술 담당
한국국제교류재단 파견 객원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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