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활에 멋을 더하다 ‘백자두각 모란문 필통’
필통(筆筒)은 글자 그대로 붓을 꽂아 놓는 붓통이다. 연필, 펜, 볼펜과 같은 필기구가 없던 과거에는 두께나 재질이 다양한 붓을 붓통에 꽂아놓고 사용했다. 문방용품이 갖추어진 서재에는 항상 붓을 보관하는 필통이 놓여있었고, 그 공간에 들어서면 붓을 사용할 때나 사용하지 않을 때나 필통이 눈에 들어왔다. 차분히 글을 읽던 선비들이 잠시 생각에 잠길 때도, 갑자기 떠오른 영감을 한 편의 시로 적어 낼 때도 그들의 시선 앞에는 필통이 놓여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필통은 다양한 솜씨를 뽐내는 조선시대 문방용품 중에서도 유독 화려하게 장식한 예가 많다.
이번에 소개하는 필통은 푸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조선후기 백자 필통이다. 높이와 너비가 거의 같은 원통형을 기본으로 큼지막한 모란 덩굴이 전면을 감싸고 있는 이 필통은 투각(透刻)기법으로 장식되었다. 강한 장식효과를 위해 문양의 여백이나 특정 부분을 도려내어 구멍을 뚫는 투각기법은 도자기를 장식하는 고급기법 중 하나이다. 투각 문양을 위해서는 원하는 형태를 만들고 적당히 흙이 굳었을 때 날카로운 칼로 문양의 외곽선을 도려내야 하는데, 이 때 정교하면서도 과감한 손의 감각이 중요했다.
한 번이라도 칼 끝의 힘이 과해서 손이 엇나가 버리면 전체 형태가 망가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필통에서는 화려한 투각 기법 외에 부조로 조각한 모란문양이 특히 인상적이다. 큼지막하게 만개한 모란꽃은 총 3단으로 구성된 꽃잎 층이 순차적으로 다른 두께감을 보이고 있는데, 뚫려진 공간 사이로 보이는 5mm 정도의 일정한 높이 위에 단차를 두고 입체적인 꽃을 조각한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아마도 장인이 슥슥 밑그림을 그리고 모란 덩굴을 조각한 후, 세부를 묘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을 것이다. 모란은 예로부터 부귀영화(富貴榮華)를 상징하는 꽃이었다.
화려한 색과 풍염한 자태를 지니고 있어 귀한 꽃이라는 의미의 부귀화(富貴花), 꽃 중의 왕이라는 의미의 화중지왕(花中之王) 등의 애칭으로도 불리웠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때 모란 꽃을 심고 감상하는 것이 유행했고, 우리나라에도 신라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632) 때 당 태종이 모란 씨앗과 그림을 보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을 만큼 크고 화려한 모란의 생김새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미술의 주요 소재로 자리잡았다. 도자기를 비롯한 여러 공예품에도 다양한 모란 장식이 발견되는데, 특히 길상(吉祥)의 의미를 담은 문양이 유행했던 조선 후기에는 도자기는 물론 자수(刺繡), 민화(民畵) 등 여러 분야에서 모란문양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때의 모란은 꽃의 옆면 보다는 위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도안화해서 표현한 예가 많은데, 풍성한 형태를 강조해서 보다 큰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얀 백자 위에 큼지막한 모란 꽃이 한가득 장식된 필통을 찬찬히 바라본다. 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틈틈이 이 필통을 바라보았던 옛 주인의 시선이 겹치는 것 같아 괜시리 마음이 설렌다.
*이 유물은 2015년 8월 13일부터 11월 8일까지 개최하는 “Splendor and Serenity: Korean Ceramics from the Honolulu Museum of Art” 특별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
<호놀룰루미술관 관람 정보>
Honolulu Museum of Art
900 South Beretania Street
808-532-8700
www.honolulumuseum.org
관람료
일반 10달러
만 17세 미만 무료 입장
<관람시간>
화요일-토요일 10:00-16:00
일요일 13:00-17:00
* 매주 월요일 휴관
* 매주 화요일 10:00~12:00은 한국어 도슨트 투어 가능
* 무료 관람일 및 휴일 관람시간은 홈페이지 참고
<이미지 정보>
1. Brush Holder with Peoney Design Korea, Joseon dynasty, first half of the 19th centuryPorcelain with openwork decoration Gift of Lt. General Oliver S. Picher, USAF (Ret.), 1956 (2225.1)백자투각 모란문 필통조선시대 19세기 전반 1956년 올리버 S. 피쳐 미공군 중장 기증 (2225.1)
<하와이 한인미술협회 후원>
오 가 영
호놀룰루미술관 아시아부 한국미술 담당
한국국제교류재단 파견 객원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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