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해가 떠올랐다. 짙은 어둠을 뚫고 붉은 해가 떠오른다. 희망찬 새해를 맞아 소망을 정하는 요즈음, 그 어느 때보다 너와 나의 복(福)을 바라는 마음이 차오른다. 이렇게 모두가 염원하는 ‘복(福)’은 사람들의 삶에 관련된 행운과 행복을 통칭한다. 한자에 기원을 둔 ‘복(福)’은 하늘의 계시를 뜻하는 ‘시’자와 배가 부른 항아리의 모양을 취한 ‘복 자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사람의 힘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좋은 운수가 가득차고 넉넉하다는 의미이다.
우리 조상들은 복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는 다섯 가지 즉, 오래 사는 ‘수(壽)’, 재물이 풍족한 ‘부(富)’, 건강하고 평안한 ‘강녕(康寧)’, 덕을 갖추고 행하는 ‘유호덕(攸好德)’, 천명을 다하고 편안한 임종을 맞는 ‘고종명(考終命)’을 오복(五福)이라 하여 중요하게 여겼다. 일부에서는 유호덕과 고종명 대신 지위가 오르는 ‘귀(貴)’와 자손이 번창하는 ‘다남(多男)’을 오복에 포함시켜 소망하기도 했다.
현실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복을 바라는 장식을 만들어냈다. 구체적인 세속의 염원을 담은 길상장식은 각종 일상용품에 스며들었고, 선조들은 일상에서 이들을 마주하며 자신들의 삶이 행복으로 충만하기를 바랐다. 다양한 상징의 문양이 유행하면서 특히 좋은 의미의 문자 자체를 도안화시켜 문양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생겼는데, 이는 아마도 문자가 담고 있는 기복(祈福)의 내용이 오해 없이 명료하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길상문자 장식은 인간의 소망을 가장 직설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한 문양이자 기호로 일상 속에 좋은 운수가 가득 차기를 염원해던 옛 사람들의 흔적이다.
길상문자 장식을 대표하는 유물로는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가 있다. ‘수(壽)’자와 ‘복(福)’자 글씨를 반복해서 적어 넣어 무병장수(無病長壽)와 만복(萬福)을 기원하는 그림이다. 조선시대 왕실부터 서민층까지 폭넓게 유행했으며, 종이에 먹으로만 적은 서예작품은 물론 채색회화나 자수회화로도 제작되었는데, 간단한 소재임에도 글자의 모양이나 구성이 다양하여 감상의 재미를 주는 경우가 많다. 호놀룰루미술관의 <백수백복도병>은 백수백복도 8폭을 모아 병풍으로 구성한 예이다.
세로로 긴 직사각형 틀에 맞춰 수복 두 글자를 번갈아 써 넣었는데, 글자를 다양한 형태로 도안화시키고, 올챙이 모양, 거북 모양, 용 모양 등의 서체를 사용하기도 하여 구성이 다채롭다. 화폭 중간에는 소나무, 사슴, 물고기 등 십장생(十長生)에 등장하는 상징을 찾아볼 수도 있다. 각 글자는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의 오방색과 금색을 번갈아 사용하여 장식성을 높이고, 세상 만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백수백복도병과 함께 좋은 복이 가득할 한 해를 기원하며 모두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
<이미지 정보>
Longevity and Good Fortune (Su-Bok)
Korea, Joseon dynasty(1392-1910), 19th century
Eight-fold screen; ink, colors, and gold on silk Gift of Elizabeth E. Han Backman, 1988 (5734.1)
백수백복도병
조선시대 19세기
비단에 채색
1988년 엘리자베스 E. 한 베크먼 기증 (5734.1)
오 가 영
호놀룰루미술관 아시아부 한국미술 담당
한국국제교류재단 파견 객원 큐레이터
<고송문화재단 후원>
<
오가영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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