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학중앙연구원 후원 UH 한국학연구소 학술 프로젝트 일환

<사진설명:지난 15일 하와이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서 열린 현대 한인이민세미나에 참석한 초청자들이 각기 다른 자신들의 이민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피터 김 회장, 이덕희 소장, 김창원 이사장, 홍승혜 부교수.>
113년의 이민역사를 자랑하는 미주한인 이민종가 하와이의 현대 이민역사를 돌아보고 이를 기록하기 위한 간담회가 지난 15일 하와이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서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는 미주한인이민100주년 기념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김창원 오하나퍼시픽 은행 이사장 겸 앰코 회장, 이덕희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장, 피터 김 야미 레스토랑 그룹 회장이 강사로 초청되어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각기 다른 시대에 이민 와 정착한 자신들의 이민사를 전하며 후세들을 위한 정체성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탕수수농장 이민선조들의 하와이 정착 역사가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을 통해 조명 되었다면 이날 세미나는 1968년부터 본격 시작된 한국으로부터의 이민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으로 초청강사들은 70년대 초반 하와이의 한인들은 교육과 수입에서 다른 민족들과 비교해 그 수준이 나았으나 이때 하와이에서 나고 자란 한인들은 한국에서 갓 이민 온 한인들을 얕보는 경향이 있었다고 회고하고 “한때 한인들이 한인임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시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피터 김 회장은 “지금은 대한민국이 부유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코리안’이라고 부르지만 70, 80년대 당시에는 대한민국은 빈곤한 국가였고 별로 자랑스러울 게 없었다”고 자신의 이민사회 정착시기를 회고했다.
아울러 한인 3, 4, 5세들에게 한인의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르치는 것은 집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역설했다.
이민선배로서 후배 이민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에 대해서는 김창원 회장은 “다른 무엇보다도, 과욕하지 말라(Don’t be greedy)”, 이덕희 소장은 “최선을 다하고 그것에 대해 당당해라(After you give your 100%, stand tall)”, 피터 김 회장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중요한 것은 실패가 아니라 이를 극복하는 것(It’s not how you fall. It’s how you get up)이다”고 말했다.
이 세미나는 현대 한인 이민사를 기록하기 위해 홍승혜 하와이 주립대 사회복지대 부교수와 백태웅 하와이 주립대 법대 부교수가 공동주최 했다.
이날 세미나 사회를 본 홍승혜 부교수는 "이번 세미나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해외 한국학 중핵대학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개최된 것으로 앞으로도 한인 이민과 정체성에 초점을 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며 “하와이에 한인 5세까지 있다고 들었는데 이들에 대한 삶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덕희 소장은 “첫 이민 100년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료가 축적되어 있는데 새 이민사를 써가고 있는 지금은 아무도 자료를 축적하지 않고 있다”며 “52년에 이민 온 김창원 회장과 63년에 이민 온 나 자신, 그리고 74년에 이민 온 피터 김 회장을 본다면 이민 온 시기에 따라서 다른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셋부터 현대이민사에 대한 자료를 축적하기 시작했고 앞으로 연구에 대한 관점을 잡아가는 것”이라고 이날 세미나의 의의를 전했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에 태어난 김창원 회장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호놀룰루로 건너와 여러 직장을 거치며 “독립적으로 사는 법을 배웠다”고 회고 했다. 하와이 주립대에서 유기화학과 수학 등으로 전과하다 1958년 토목공학(Civil Engineering)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R.M. Towill Corp.에 입사해 하급공학자(Junior Engineer)로 취직한 김창원 회장은 이 시기가 “언제나 감사했고 즐거운 추억을 많이 쌓은, 많은 경험을 한 최고의 시기였다”고 했다.
밑바닥에서 시작해 1978년 사장으로 승진하고 1994년에는 R.M. Towill Corp의 모회사인 킬로하나 회사의 CEO가 된 김창원 회장은 “어릴 적부터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살아왔다”며 “승진, 직책, 연봉을 안중에 두지 않고 최대한 양심적이고 효율적으로 일하다 보니 임금이 오르고 직위도 덩달아 올랐다”고 회고 했다. 1941년생인 이덕희 소장은 1963년 이화여대에서 사회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1965년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1968년 패서디나의 캘리포니아 남가주대에서 도시계획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 소장은 “당시로서는 유일하게, 남녀를 가리지 않고 아시안으로서는 최초로 도시계획학 석사를 땄다”고 말했으며 2001년까지 도시계획가로 일하고 그 이후에는 커뮤니티의 각종 행사에 참여했다.
피터 김 회장은 74년 하와이로 이주해 카이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8년 하와이 주립대에 입학해 미식축구팀에서 활약했다. 김 회장은 좀 더 큰 물로 나가기 위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앨라배마 주립대로 편입해 전설적인 미식축구 코치인 윌리엄 “베어” 브라이언트 밑에서 대학 미식축구 선수로 뛰었다. 졸업 후 하와이로 돌아와 야미바베큐를 시작으로 시그니처 스테이크 하우스, 릴리하베이커리 등 유명 레스토랑 그룹을 일군 김 회장은 `인생에서 가장 많은 것을 이 시기에 배웠다'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아직도 브라이언트 코치가 뒤에서 날 보고 있는 것 같다”며 인생의 멘토로서 코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피터 김 야미 바베큐 그룹 회장 / 이덕희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장 / 김창원 오하나 퍼시픽 은행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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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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