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어머님은 금년 여름 (7월 5일)으로 꽉 찬 100세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가녀린 여인의 몸으로 강산이 10번이나 바뀌는 세월의 풍파를 온 몸으로 견디며 사셨다. 허리가 굽고 귀가 좀 어두울 뿐 다른 병은 없으시다.
어머님 건강의 비결을 관찰해보니 소식하며 매끼 생선은 빼놓지 않으신다. 그보다는 매사 자식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크고 작은 일을 손수 처리하신다. 아직도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일하는 분이 있어도 식사준비는 당신이 직접 하신다. 연세도 있으신데 이젠 제발 편하게 사시라고 하면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듯 섭섭하게 생각 하신다.
작년 여름 어머님 백수연 때문에 한국을 방문 했을 때다. 오랜 만에 만난 며느리에게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죽고 싶은데 왜 이렇게 오래 사는지 모르겠다”였다. 그 말을 옆에서 들은 시누이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 몸에 좋은 것만 골라 들고 건강을 챙기신다”며 큭큭 웃었다. 세상에 첫째가는 거짓말이 노인이 죽고 싶다는 말이라는데 정말로 죽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고 싶다는 다른 표현일 것이다.
어머님은 다산을 하셨다. 열 남매를 낳으셨다는데 내가 결혼할 당시는 딸 다섯에 아들이 둘이였다. 막내인 시동생은 너무 어려서 치아를 갈고 있는 중이었고 형님이 어려워 얼굴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 막내아들 밑으로 맨 위인 캐나다에 사는 시누이가 맡긴 손녀까지 기르셨다. 그 손녀 바로 밑으론 우리 두 아들이 연년생으로 태어났으니 어머님의 인생은 아이들을 돌보는 일로 점철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0세인 지금까지도 자손들 걱정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으시다.
어머님은 한국사람 치고는 유난히 피부가 희고 자태도 고우시다. 시누님들이 어머님을 닮아서 모두 미인이다. 당시로선 고등 교육을 받으신 분으로 지금까지도 전등불을 환하게 켜 놓고 돋보기로 신문을 읽으신다. 음식 솜씨가 좋고 손재주가 많아 옷도 잘 만들고 그림도 잘 그리신다. 시누이들이 어릴 때 명절이면 한복에 금박을 물리는 대신 천에다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려서 입히셨다고 한다.
그런 어머님이 아무런 재주도 없고 세상 물정도 모르고 물도 떠다 받쳐야만 마실 줄 아는 맏며느리를 맞으셨다. 바로 나다. 그런데 잔소리나 꾸중들은 기억이 없다. 한국에서 모시고 살 땐 체념을 하셨는지 아예 살림은 며느리에게 맡기지 않으셨다. 며느리가 미국 가서 도와주는 사람 없이 어떻게 살림을 할지 걱정이 태산 같으셨던 모양이다.
지금은 남편이 은퇴하여 미국과 한국을 오가고 있다. 남편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올 때면 고사리, 김, 고춧가루, 온갖 건어물을 플라스틱 랩으로 꽁꽁 싸매고 그 속에다는 조리법을 자상하게 적어서 보내곤 하셨다.
한 번은 멸치 똥을 빼고 잘 손질하여 보내며 멸치 볶는 법을 적은 편지를 넣어서 보내셨다. 내 나이 60이 넘은 때였다. 가슴이 울컥 했다. 액자에 넣어 부엌에 걸어 놓은 그 편지를 볼 때마다 어머님의 사랑을 가슴에 새긴다.
지난 해 한국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떠날 때 어머님은 또 내게 말씀하셨다. 죽고 싶은데 왜 이렇게 오래 사는지 모르겠다고. 당신 때문에 아들이 가족이 살고 있는 미국에 눌러앉지 못하고 일 년에 6개월씩 한국과 미국을 왔다 갔다 해서 며느리에게 미안하다는 뜻일 게다.
어머니, 저는 괜찮아요. 아무 걱정 마시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
<
배광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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