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세상에서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고 지친 몸으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타면, 문득 내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하는 대상이 있다. 대개 치명적인 귀여움으로 무장한 아기나 동물, 특히 이웃집의 반려견이다. 개인적으로 워낙 아기나 강아지를 좋아하는 편이라, 아이들이나 동물들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보는 게 내게는 가장 평화로운 주말 활동 중 하나이다.
얼마 전에는 친구의 온 가족이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장거리 여행을 해야 해서 그 집에 머물며 강아지 ‘슬링키’를 돌봐주는 일을 3~4일 한 적이 있다. 이는 최근 한국 방송에서 본 애견 훈련 전문가들의 조언들을 실습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강아지와 산책 때 슬링키가 평화롭게 냄새를 맡고 탐색할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려주고, 짖을 때는 왜 짖는지 강아지의 심리적 상태를 이해하도록 하고, 말보다는 몸짓으로 우리가 편안한 상태임을 알려주라는 전문가의 말을 하나하나 시도해 보니, 놀랍게도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같이 사는 가족도 아닌 나의 배 위에서 머리를 뉘이고 잠드는 작은 닥스훈트를 보니 마음이 정말 따듯해졌었다.
사실 나에게 첫 반려견 경험은 쉽지 않았다. 대학원생일 때 룸메이트들과 코카스페니얼 ‘간지’를 같이 길렀는데 당시의 나는 참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처음에는 손가락을 물릴까 봐 무서워했고, 목욕 후 강아지가 물기를 털기 위해 바닥을 구를 때는 우리집 강아지가 제 정신이 아닌 건가 걱정했다. 물론 나중에는 양치도 해주고 발톱도 깎아줄 만큼 편해졌지만, 강아지에게 주인이 어떤 존재인지 산책이 어떤 의미인지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고 모든 것은 그저 책임감으로 했다.
불임수술과 사슴 발톱 제거 수술 후 강아지가 아파할 때는 말이 안 통하니 그저 밤새 안타까워했고, 최대한 애정과 관심을 주기는 했지만 강아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일련의 경험들을 하면서 개는 개답게(?) 살도록 해주어야지, 인간의 욕심으로 데려다가 인간에게 맞추며 살게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당시에도 막연하게나마 하긴 했었다.
최근 애견 훈련전문가들의 조언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위계질서 확립이나 일방적인 학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이제는 반려견의 천성을 보다 존중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실제로 슬링키와 지내보니 강아지와의 관계에서도 상대에 대한 이해와 인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결국 개나 사람이나 생긴 대로 살 수 있도록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주고 공동체를 위한 최소한의 제약과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이라는 것을 이제야 배운 기분이다.
사람이 실패한 첫사랑에서 사랑을 배워 나오듯, 마음만으로는 좋은 반려자도 반려견의 주인도 되기 어려운 모양이다. 배우고 이해하고 인정하는 관계는 그 대상이 사람이든 개든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여차저차 실패한 내 첫사랑 간지는 대부분의 첫사랑이 그러하듯이 뭔가 모르게 그립고 미안하고 애잔한 구석이 있다. 이제는 6살이 넘었을 간지가 어디에서라도 개답게 생활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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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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