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장수시대로 접어들고 보니 ‘백세인생’이니 ‘내 나이가 어때서’ 등의 노래가 유행하고 그 유행을 따라 노인들의 기세가 등등하다. 그러나 결국 나이가 들면 몸이 약해지고 하나 둘 질병들이 따라오게 마련이다. 나이가 들어 늙는 다는 것은 자랑도 아니요 더구나 즐거운 일은 더더욱 아니다.
내 남편은 젊어서부터 몸이 약한 편에 속했지만, 한 두가지 질병은 약으로 그런대로 잘 다스리고 있었는데 요즘 갑자기 눈이 나빠져 자주 안과 신세를 지다가 며칠 전 한쪽 눈의 백내장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은 잘되어서 잘 보인다고 좋아했지만 다른 눈에 문제가 생겨서 동공에 직접 주사를 맞고 있고, 그러고 나면 눈에서 피눈물도 흐르고 아파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앞으로 수십번을 더 주사를 맞아야 한다니 기가 막힌 일이다. 몸이 만냥이면 눈은 구천냥이라는 옛말이 있다. 우리 몸 중에 중요하지 않은 기관이 없지만 눈이 보이지 않으면 그야말로 이 세상은 암흑이다.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은퇴촌 이웃이나 친구들도 눈 아니면 귀에 문제가 있고, 이도 점점 부실해져 치과를 자주 드나드는 이가 많다. ‘팔십 평생을 잘 써먹었으니 이제 한두 군데 고장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모두들 말하며 위안을 한다.
나는 남편의 눈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아무리 혼자 건강하려고 기를 쓰면 무얼 하나, 한쪽이 성치 않으면 다른 한쪽도 시간과 희생을 감수하며 힘든 시간을 감당해야 하니 그 사실이 좀 답답하고 약간의 짜증이 났다.
좀 무료해서 TV를 켰더니 가요무대가 나오고 ‘황혼의 엘레지’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는 갑자기 그 노래 속에서 50년도 더 넘은 시간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그때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가장 가난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는데 그날에 비하면 지금 나는 얼마나 축복 받고 행복한가를 깨닫게 되었다. 이제 나는 황혼의 엘레지가 아닌 황혼의 축가를 불러야했다.
며칠 전에 시조 쓰시는 분을 재회하게 되었다. 그분은 연세가 구십이 돼가는 분인데 곧 새 시조집이 출간된다고 들었다. 눈이 나쁘셔서 고생을 하시면서도 아직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룩하시는 모습이 정말 장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도 소녀 같으신 얼굴과 온화한 미소를 지으시는 그분과 아쉬운 이별을 할 때 그분은 오래도록 그곳에 서서 우리에게 손을 흔드시는 모습이 마음속에 안스럽게 각인이 되었다.늘 이별은 섭섭하고 슬프지만 나이 드신 분들과 헤어지는 일은 특별한 감정을 가져다준다. 우리가 또 만날 수 있을까. 이것이 혹 마지막 이별은 아닐까하는 우려에서다.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 흘러나오는 ‘우울한 일요일’과 ‘그녀의 눈물’ 등의 노래가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가을 풍경과 더불어 마음을 스산하게 했으나 적당히 센치멘탈하고 적당히 행복한 오후였다.나는 오늘 새로운 친구를 만들었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으나 언제나 거리를 두고 보아온 친구였는데 어느 순간 마음이 통하고 어떤 대화의 시점에서 딱! 하고 서로 공유하는 공감대가 있어야 그때부터 진정한 소통의 길이 열리면서 새로운 친구가 되는 것 같다. 새로운 친구가 되면 곧 서로가 궁금하고 만나고 싶고 그런 감정이 생기게 되나보다.
팔십을 바라보는 내 나이에도 여전히 새로운 친구를 만들 수가 있다는 기대와 설렘에서 나는 아직도 살만해! 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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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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