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 대법원장으로 미주 한인 자긍심 고취, 하와이 한인사회 정신적 지주

문대양 전 대법원장 현 오하나 퍼시픽은행 이사
'나는 역사다' 시리즈를 시작하며 우리들의 이민선배들을 돌아 보니 새삼 그들의 삶에 존경심과 더불어 또 그들만큼 우리 후배들도 잘 해낼 수 있을까 잠시 걱정이 앞선다. 지난 주 미주한인이민 114주년 기념식장에서 만난 자랑스러운 이민 선배들의 매년 달라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사탕수수 농장 이민3세로 1940년 출생한 문 대법원장 (76?영어명 로날드)은 미주한인이민90주년을 시작하며 미주한인이민100주년 기념사업 준비를 위한 대장정의 첫 발을 디뎠던 1993년, 하와이주 대법원장으로 발탁되어 미주 한인들의 자긍심을 한껏 고취시키며 이민100주년기념사업 준비에 한껏 힘을 실어 주었다.
그는 하와이 이민선조의 발자취와 한인사회가 나아가야 할 미래를 삶으로 보여주고 있다.
문 전 대법원장은 1990년 49세에 하와이 대법관에 임명된 후 2010년 70세에 정년퇴직을 하기까지 법조인으로 존경을 받으며 탁월한 업무능력을 인정받았다. 판사로서 문 대법원장이 맡았던 첫 재판은 ‘계’를 깨고 도망간 한국 여인을 상대로 한 소송이었다고 한다. 그는 "다로모시" 라고 언급하며 한인들의 계 문화를 너무도 잘 이해했기에 명쾌한 판결을 내릴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하와이 법조계에서는 그의 탁월한 업무능력을 아쉬워하며 하와이 주 대법원장의 정년이 너무 이르다는 여론이 조성되기도 했다. 2010년 하와이 주 정부는 문 전 대법원장의 업적을 기려 신축 카폴레이 지방법원 청사를 'Ronald T.Y Courthouse'로 명명했다. 하와이 왕립기사단(Royal Order of Kamehameha |)은 2011년 그에게 기사작위를 수여했다.
문대양 전 대법원장은 2003년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을 거치며 현직 주대법원장으로 자신이 한국인이란 사실을 자랑스러워 하며 그의 선친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표하곤 했다. 자신의 삶의 멘토가 바로 조부와 외조부 그리고 선친의 가르침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항상 겸손하고 타인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조언은 문대법원장을 비롯한 자랑스러운 한인들의 인터뷰에서 어김없이 나온다. 그들의 겸손한 삶의 태도가 바로 다민족사회 하와이 이민사회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넓히고 다져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 듯하다.
문대양 전 대법원장의 할아버지 '문정헌'과 외할아버지 '이만기'는 1903년 1월13일 이민선조 102명에 포함돼 호놀룰루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뼈가 빠지게’ 일을 하면서도 한인이란 민족정신은 잃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한국에서 사진신부를 데려왔고 사탕수수 농장 노동계약이 끝난 뒤 오하우섬 와히아와로 이주해 양복점을 차린다. 할아버지는 아내가 3남1녀를 낳고 26세에 숨지자 혼자 아이들 꿋꿋하게 키운다. 외할아버지 역시 노동계약 만료 후 이발소를 운영하다 한국에 두고 온 아내를 15년 만에 데려 온다. 이후 두 사람은 사돈을 맺어 문정헌의 둘째 아들 문덕만(영어명 듀크 문)과 이만기 딸 이메리는 가정을 이루고 문대양을 낳았다. 할아버지는 '바다 같은 큰 인물'이 되라는 바람으로 대양이란 이름을 지었다고 전하는 문 대법원장은 이제 90세의 나이를 훌쩍 넘은 모친을 위해 매주 밀릴라니 양로원을 방문하고 와이아와 교회 출석도 게을리 하지 않는 효자의 모범을 보여 준다.
문 전 대법원장은 아이오와 대학에서 심리학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아이오와 주립 법대에서 법조인 토대를 닦았다. 문대양 전 대법원장은 "나는 한인 선조들이 어떻게 하와이에 왔고 그들이 흘린 땀을 안다"며 "내가 한인이란 사실이 자랑스럽다. 가족과 타인에게 감사하고 사회에 감사할 줄 아는 자세는 조부와 외조부, 부모님의 삶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씀대로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지 않은 것에 못내 아쉬움을 전한다.
문 전 대법원장은 "한인들이 한국과 미국을 배우고 여러 나라의 문화다양성을 포용하자"는 말도 잊지 않는다. 자신의 핏줄과 문화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다른 인종에 대한 우월감이 아니라 포용력으로 바꿔야 한국이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조언이다. 이 부분은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모범 답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은퇴 직후 한국을 비롯한 미국 각지역을 두루 여행할 것이라며 설레었지만 자택 지붕을 손보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낙상하며 한동안 고생을 하기도 했던 문 전 대법원장은 은퇴 후 동지회와 태극회 등 한인 단체들의 활동에도 관심을 가지며 2010년 11월에는 하와이주 유일한 한인 은행인 오하나 퍼시픽 은행 이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문 전대법원장의 은행 이사직 수락 소식은 주류사회에 신생 한인자본 은행의 대외적 이미지를 높이며 한류 경제의 열기를 체감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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