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내기 다마내기 맛 좋은 고래고기!” 그 날도 마지막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망치듯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응로의 뒤에는 어김없이 한 무리의 또래들이 따라가면서 장단에 맞춰 이렇게 놀려대고 있었다. 응로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 내가 다니던 시골 초등학교로 전학 온 친구였다.
응로는 우리 시골 아이들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이 달랐다. 우선 얼굴이 뿌윰하게 도시스럽게 생긴데다 책보자기가 아니라 멋진 책가방을 들고 다녔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놀라게 한 건 응로의 말씨였다. 공부도 썩 잘 하지 못하던 그 애가 늘 정확한 표준말을 또박또박 하는 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응로는 금세 전교생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그 관심은 곧 놀림으로 변하였다. 그 애만 보면 쓸 데 없는 말을 시키고, 그 말투를 흉내 내다가는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 좋은 고래고기!”의 합창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응로가 울상이 되어 “얘들아, 그러지 마. 싫어!”라고 하면, 그 낯선 말투를 또 재미있어 하며 더욱 신이 나서 놀려대곤 했다.
다들 어슷비슷한 환경 속에 고만고만한 일상을 살아가는 시골 아이들 속에서 어느 날 불쑥 나타난 이질적인 존재인 응로는 그렇게 혹독하게 놀림당하고 배척받았다. 그 때 우리들은 나와 다른 이질적인 존재를 받아들일 만큼 세련되지 못한 철부지 촌놈들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고 배척하는 속성을 갖고 있는 듯하다. 최근 한국에서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 장애인, 트랜스젠더 등 사회적 소수자 열 명 중 여덟 명이 온라인 뉴스기사나 영상의 댓글에서 혐오표현을 접했다고 한다. 온라인 카페나 커뮤니티 댓글(74%), 페이스북(73%), 블로그 댓글(60%), 트위터 댓글(49%) 등이 뒤따랐다. 장애인의 56%, 성적 소수자의 43%, 이주민의 43%가 이런 사회적인 차별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국정교과서의 집필이 완료되어 마침내 책이 나왔다. 그런데, 전국에서 새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를 신청했다가 마지막 남은 경북 지역 세 학교 중 두 학교가 외부 압박과 학내 사정으로 신청을 철회했거나 신청할 길이 막혔다고 한다. 이렇게 되자 전국 중 고등학교 5,566곳 가운데 새 교과서 연구 신청학교는 단 한 군데만 남았다고 한다.
야당이 끈질기게 반대하고, 좌파 교육감들이 신청서를 중간에서 막고, 전교조와 민노총 같은 단체가 앞장서서 막은 결과라고 한다. 정부가 역사과목에 국정교과서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가장 우려되는 점이 다양성을 상실한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역사관을 심어주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야당과 전교조를 중심으로 한 반대파들의 주장도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5,566학교 중 단 두세 군데에서도 새 교과서를 채택할 수 없게 막음으로써,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획일적인 내용의 교과서를 가르치게 하는 것이 저들이 말하는 다양성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칙 중에 다수결의 원칙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소수에 대한 배려와 다양성의 존중이다. 소수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없는 다수결은 전체주의적 독단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모든 면에서 다르게 태어나기 때문에 각자 행동과 생각과 추구하는 바가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는 곧 인간성을 말살하는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바라보노라면, 어린 시절 응로의 뒤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던 그 철부지아이들의 악다구니가 귓전을 때리는 듯 하여 자꾸 도리질을 하곤 한다.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 좋은 고래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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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택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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