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쓰이는 4자성어 중에 “일은 반드시 바른 데로 돌아간다”라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 있다. 한평생을 살면서 기쁜 일, 슬픈 일, 고통스러운 일, 억울한 일을 수없이 겪는 많은 사람들에게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데로 돌아간다”는 긍정적 뜻을 담은 이 성어는 용기와 위로를 주는 좋은 교훈 역할을 했을 것이다.
사필귀정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부터 국가적인 차원, 나아가서는 인류 전체 차원에서 더디나마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법의 심판대로 벌을 받는 것, 가혹한 통치로 국민을 고통 속에 빠트린 독재자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 무력을 이용해서 타인종 말살정책을 써왔던 강국이 결국 어떤 형태로도 보상을 하게 되는 경우 모두 사필귀정의 실례들이다.
수년 전 동유럽 여행을 하면서 2차 세계대전 중 유태인을 수용, 학살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가본 적이 있다. 방마다 남겨진 처참한 집단학살의 흔적을 보면서, 이런 끔직한 범죄가 어떻게 수년 동안 계속되었을까 하는 대답 없는 의문을 품었었다.
그러나 이 끔직한 범죄도 6년 동안의 전쟁이 끝나면서, 가해자들은 모두 패배해서 죽고, 자살하고, 도망치고, 일생을 숨어서 살고, 기타 응분의 벌을 받게 되었다. 악을 멸망시키겠다는 결의로 값비싼 희생을 치르면서 전쟁에 참가했던 정의가 결국 승리했다. 길다면 길었던 6년의 암흑시대의 시작과 종말은 사필귀정의 원칙이 잘 적용되었던 실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필귀정의 원칙이 항상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부당하고 불공평한 사태가 바른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 오랫동안 미제로 남아있는 흉악범죄, 수많은 악행을 저지른 독재자가 편안하게 죽은 사례들을 보면 항상 ‘사필귀정’이라고 주장하기 어렵다.
사필귀정 원칙의 또 한가지 허점은 고통과, 파행과 불합리의 상태가 정상으로 바로잡힐 때까지 오랜 세월이 지나야 하고, 치러야 할 희생이 크다는 것이다. 수많은 노예들을 밝은 세상으로 나오게 해준 노예 해방까지 수백년이 걸렸다는 것이 좋은 예이다. 모든 일이 반드시 올바른 상태로 된다는 가르침에 마냥 안심하고 만족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 보다 훨씬 근본적인 사필귀정의 허점은, 네 글자 중 마지막 글자인 “正” 자의 의미가 애매모호해졌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세계는 이제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가 되었지만, 내면적으로는 인종, 피부색, 종교, 이념, 관습의 차이 때문에 만인이 공감하는 “正” 의 개념은 사라져 버렸다.
이제 “우리의 正”과 “저들의 正”은 건널 수 없는 이념의 대치를 보이고 있고, 이쪽에서 “구국 영웅”이라고 떠받드는 인물이 저쪽에서는 “매국 악당”으로 공격받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이런 갈등과 증오를 진정시키고 올바른 “지도”를 해야 하는 소위 지도자들이 오히려 앞장서서 이런 혼란과 분열을 부추기고 있는 현실이다. 지도자의 덕목인 화해, 포용, 통합은 이제 사전에만 존재하는 단어가 된듯하다.
아무래도 사필귀정(事必歸正)의 필(必)대신 반(半)을 집어넣어 사반귀정(事半歸正)이라고 고쳐 쓰는 것이 더 현실에 가까운 진단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아직 사필귀정이라는 성어를 좋아한다. 그렇게 믿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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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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